러시아 외교 “남북 등거리”/조­소방위조약 폐기 방침이 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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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반도주변 안보구도 지각변동 예상/한국선 바라되 북한고립 가속화 걱정
러시아가 김영삼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을 계기로 지난 61년 체결된 조소 상호방위조약 무효화를 공식 천명할 경우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구도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는 지난 33년간 북한의 안보를 지탱해주던 조중 우호동맹·조소 상호원조조약이라는 양대 지주중 하나가 붕괴되는 것을 뜻한다.
조소 상호방위조약의 중대성은 이 조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61년 김일성주석과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 사이에 체결된 이 조약은 전문과 6조로 구성돼 있다.
그 가운데 핵심내용은 조약 1조의 「조약체결국은 일방이 제3국 또는 3국의 연합국측으로부터 군사공격이 있을 경우 타방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군사적으로 또는 다른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풀어 설명하자면 이 조항은 『소련은 북한이 한국 및 동맹관계인 미국으로부터 침략당할 경우 즉각 개입한다』는 의미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동개입 부분이다. 즉 한국도 미국과 6·25직후 이와 비슷한 한미 방위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 방위조약은 자동개입조항이 없다.
원문에 따르면 「미국은 적절한 법적절차를 거쳐 한국을 지원한다」고 돼있다.
따라서 이 대목을 두고 안보전문가들은 그동안 『한미 방위조약이 조소 상호방위조약보다 불리하다』고 끊임없이 지적해왔다.
러시아가 조소 조약의 공식폐기를 선언할 경우 이는 지난 40년간 유지된 북방 3각관계를 이루고 있던 한 축이 정식 폐기된다. 따라서 북한은 이제 중국과 체결된 조중 우호조약 하나에 지탱하는 외로운 구도속에 자신의 안보를 꾸려가게 된다.
러시아가 조소 상호원조조약 폐기문제를 이번에 처음 거론한 것은 아니다. 한국은 지난 90년 9월 한소 수교이후 우리의 안보와 직접 연관되는 이 문제를 비공식적으로 거론해왔고 이같은 우리의 입장은 옐친 대통령 집권후 한층 강화됐다.
그 결과 지난해 1월 쿠나제 아태차관(현 주한 러시아 대사)이 평양을 방문,북측에 이 조약의 개정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러시아의 이같은 개정요구에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러시아가 아직도 이 조약 폐기문제를 한반도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입김을 강화키 위한 정치·외교적 지렛대로 쓰려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정부는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식으로 거론하기 보다는 지난 몇년간 이 문제를 비공식 채널을 통해 꾸준히 제기했다.
그러나 모스크바는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잘 알지 않느냐』며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는 최근 한반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갖기 위해서는 남북한간에 법적으로 「균형있는 외교」를 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며 이의 철폐를 적극화하고,김 대통령의 방문을 좋은 시기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같은 요인을 고려,이번 김 대통령 모스크바 방문시 이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의 태도를 주시하되 매달리지는 않는다』는 내부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소조약 폐기에 집착할 경우 자칫 양국간 현안인 경협차관 14억7천만달러 상환과 KAL기 격추에 따른 배상문제 등을 소홀히 다뤄 자충수를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측은 조약폐기가 북한이 고립을 가속화시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최원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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