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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식품' 무조건 광고 규제는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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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소비자는 멍청이가 아니다. 그들은 당신의 아내만큼 똑똑하다.”

 현대 광고인의 대부 격인 데이비드 오길비는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제멋대로 소비자들의 반응을 재단하는 것을 경계했다.

 지금 이 말을 세계 10위권의 광고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 사회에 되묻고 싶다. 우리는 소비자들을 ‘합리적이고 똑똑한 경제주체’로 대접하는가, 아니면 규제정책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멍청한 군중(衆愚)’으로 생각하는가.

 광고는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효율적 수단이라는 사전적 정의와 달리 그동안 경제정책적 측면에서 상당히 푸대접을 받아왔다. 어떤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손쉽게 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광고 규제가 도입됐던 것이다.

 최근 정치권은 어린이들을 유해식품으로부터 격리시키겠다며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특별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법안엔 약방의 감초처럼 광고 규제가 또 들어갔다. 이 법이 제정되면 2010년부터 지방·당·나트륨 등이 많이 들어가 비만이나 질병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식품은 광고시간을 제한받거나 금지된다.

 어린이의 건강을 위한다는 대의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발상이 사안의 본질에 대한 충분한 과학적 검토와 사회적 합의를 거치고 제기됐는가에 있다. 쉽게 말해 식품업계의 추계대로 최대 8조원의 피해가 발생하고, 헌법상 보호돼야 할 기업의 경제활동 자유가 위축되는 대가를 치르고 나면 어린이 비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세계적으로 어린이 비만 문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광고를 제한하면 비만이 줄어든다는 결론은 아직 없다. 실제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게 광고를 규제하는 스웨덴의 경우 어린이 비만율은 다른 국가와 차이가 없으며, 광고가 자유로운 네덜란드의 경우 오히려 비만율이 더 낮다

 어떤 이는 어린이 건강을 위해 광고를 다소 규제하고 피해가 조금 생기면 어떠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엔 이슈를 원인부터 파고들어 근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대충 넘어가려는 편의주의적 사고가 숨어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어린이 비만 문제에 대해 과학적인 연구에 나서야 한다. 유해성분이 문제라면 먼저 정확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지켜나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 식품 안전의 문제는 ‘광고 규제’가 아닌 ‘안전 규제’로 푸는 게 마땅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조건 기업을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보다는 먼저 어린이들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운동을 장려하고, 현명한 식생활 습관을 갖도록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선행해야 한다. 정말 규제가 필요하면 먼저 관련 업계가 자율 규제를 실시하고 그래도 안 되면 정부가 타율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것이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이라고 본다.

 규제정책을 우선시하는 이면에는 규제를 하는 사람이 규제를 당하는 사람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위험한 전제가 숨어 있다. 그러나 소비자는 생각보다 더 똑똑하다. 상식과 원칙을 중시하는 것,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선행하는 것 등이 건강한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다지는 초석이라고 본다.

김이환 한국광고주협회 상근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