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목공문제 조용한 접근을(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시베리아의 벌목장에서 일하다가 자유를 찾아 탈출한 5명의 북한동포들이 18일 서울에 도착했다. 오로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걸고 탈출한 그들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갖게 된 이들 동포를 우리는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들인다.
정부가 인도적인 차원에서 탈출 벌목공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이후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 것은 그들이 처음이다. 귀순을 희망하는 북한동포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혼선 때문에 정부에 대한 비판과 우려도 있었지만 일단 이러한 결실을 거둔 외교적 노력은 평가할만하다. 아울러 우리는 이번 성과를 계기로 시베리아 벌목공을 비롯해 남한에 정착하기를 원하는 북한 탈출 동포에 대한 정부의 태세에 몇가지 조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그들을 국내로 맞아들이는 작업을 이제부터는 지극히 냉정하고 실무적인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을 받아들이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확고해졌고,러시아정부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상 커다란 장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한때 흥분하고 과장된 형태로 공개됨으로써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북한 당국이 러시아에 격렬하게 항의해 외교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한 면도 없지 않았다. 탈출자들이 서울에 도착하기까지는 거쳐야 할 러시아의 법과 행정적 절차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단시일내에 그들을 데려올 수 있는 것처럼 정부 고위당국자가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러시아측으로부터 항의를 받기까지 했다. 이번 서울에 도착한 벌목공들의 탈출경로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은 그런 면에서 잘한 일이다.
또 하나 정부가 인식해야 할 점은 이제부터 북한 탈출자들을 단순히 귀순자 차원에서만 다루지 말라는 점이다. 최근 여만철씨 일가의 경우에서 보듯 이곳 저곳에서 탈출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들이 갈 곳이 남한쪽이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단순히 남북한의 체제 경쟁에 따른 심리적·선전적 차원의 귀순이 아니라 심각한 정치적·사회적 문제로 파악하고 접근해야 한다.
또 지금처럼 귀순자에게 정착금과 주택을 마련해주도록 규정한 귀순동포보호법을 그들 모두에게 적용하기는 어렵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하고 취업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쪽으로 관련법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독일이 통일되기전 서독이 동독 탈출자들을 일정기간 수용소에서 직업교육 등 사회적응훈련을 시킨뒤 사회에 내보낸 것도 우리의 대책수립에 참고할만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북한 탈출자 문제는 남북한 대결구도가 아닌 통일정책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