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48. 새로운 PET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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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럼비아대가 추진하던 PET 연구센터 설립을 위한 제안서를 쓰는 한편 UCLA에서 가져온 PET의 성능 향상에 나섰다.

 1981년께였다. 성능 향상은 먼저 영상의 품질을 높이는 데 맞춰졌다. 내가 처음 개발한 것은 인체를 조밀하게 찍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방사선 검출기 수(채널)가 64개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물론 검출기 수를 늘리면 늘릴수록, 또 검출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영상은 조밀해진다. 요즘 PET는 검출기 수가 10만여 개나 된다.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지고, 검출기 가격이 싸졌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상품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적은 수의 검출기로 어떻게 하면 인체를 조밀하게 찍을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는 것도 큰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미 만든 원형(圓形)에 64개의 검출기가 붙어 있는 형태의 PET를 반으로 쪼개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당시 KAIST 대학원생이었던 홍기상(현 포항공대 교수)군 등 몇 사람이 제안했다. 그런 다음 반쪽과 반쪽 사이에 약간 틈을 둬 이것을 축으로 삼아 두 개의 반쪽을 움직이면 인체를 조밀하게 찍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우리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는 영상 복구 및 재구성에 핵심인 샘플링을 늘리는 결정적인 아이디어였다.

기존 원형 PET의 중간을 뚝 잘라 약간 틈을 벌린 채 붙여 놓은 형태였다. 서서히 반쪽을 움직이며 영상을 촬영했다. 반쪽을 움직이는 건 카메라의 촬영 각도를 조금씩 바꿀 수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하자 고정된 원형보다 훨씬 더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 원형 PET의 단점을 보완한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그 기술도 PET 시장 침체로 묻혀버렸다.

그 기술을 개발한 지 20여 년이 지난 2006년에 독일 의료기 업체인 지멘스(옛 CTI)를 방문했을 때였다. 내가 개발한 것과 비슷한 PET를 연구용으로 만들어 놓은 걸 봤다. 지멘스는 나와 오랜 인연이 있는 업체다. 나중에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현재 지멘스가 개발한 PET에 내 기술이 꽤 녹아 있는 셈이다. 뇌과학연구소에도 지멘스의 기기가 연구용으로 들어와 있다. 20~30년이 지났고, 검출기 수가 64개에서 12만개로 늘어났지만 단번에 새 기기의 원리와 구성을 알아볼 수 있었고 단점도 찾아냈다. 왜냐하면 원천 기술을 연구한 사람은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봤기 때문이다.

어떻든 지멘스는 연구용으로 만든 PET를 계속 보내주기로 했다. 20여 년 전 내가 개발한 PET의 다양한 이론을 다시 한번 검증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는 자기의 연구결과가 수십 년이 지나 다시 살아났을 때 희열을 느낀다. 비록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어도 그걸 다시 해볼 수 있다는 게 나를 매우 흥분시킨다. 나는 그러면서 연구 열정을 충전한다.

낡은 논문집을 보고 있노라면 거칠 것 없이 뛰어다녔던 30~40대의 UCLA와 컬럼비아대 시절이 눈에 삼삼하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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