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47. 사라진 최초의 PET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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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가천의과학대에 뇌과학연구소를 세우려고 할 때인 2005년이다. 내가 소장으로 내정돼 있었다. 나의 첫 개발 작품인 PET를 미국에서 가져오고 싶었다. 의료장비 시장에서는 PET가 한창 뜨는 중이었고, 덩달아 내 진가도 새롭게 평가받고 있을 때였다.

 “UCLA에서 1975년 개발한 64채널 PET 개발품을 뇌과학연구소에 전시해 놓으면 근사할 것 같은데… ”라고 당시 뇌과학연구소 이철옥 고문이 말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즉각 PET 개발품을 놔둔 컬럼비아대에 문의했다. 그러나 자신의 일이 아니어서인지 담당자들 가운데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일부러 미국으로 가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를 방문했다. 그곳을 떠난 지 30년이 다 돼 갔지만 교정과 건물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내가 근무했던 연구동도 그대로였다.

 연구 장비와 창고 관리인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연락했다. 그러나 30년 전 내가 근무할 때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직원들이 바뀔 만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때 상황을 잘 아는 연구원을 찾아 알아보았더니 3년 전에 폐기 처분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실망을 금치 못했다.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을 고물로 처분했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보관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아는 사람이 없더라는 얘기였다. 내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UC얼바인으로 갈 때 그것도 옮길 수 있었을 텐데…. 후회막급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그 PET는 고철로 취급돼 어느 용광로에 들어가 재활용돼버렸을 것이다. 연구실 후배였던 에릭슨 박사가 스웨덴으로 가면서 달라고 하던 것도 거절했던 귀중품이었다.

 나는 UCLA에서 UC샌디에고를 거쳐 컬럼비아대로 옮길 때 PET를 가져갔다. 연구비가 있어 PET 성능을 개량해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컬럼비아대에서 UC얼바인으로 옮길 때는 PET 연구 바람이 잠잠했다. 그래서 그냥 컬럼비아대에 남겨두고 왔다.

 나와 PET 개발을 놓고 치열할 경쟁을 벌였던 워싱턴대의 터 포고시안 교수가 만든 육각형 PET의 첫 개발품은 지금도 워싱턴대에 전시돼 있다. 몇 년 전 우리 연구소의 김영보 교수가 워싱턴대를 방문했을 때 육각형 PET의 전시품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물론 첫 개발품이 있으나 없으나 연구 업적을 평가하는 데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내가 이런 것 했소” 라고 보여줄 게 있으면 더 좋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내가 ‘첫 작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게 아쉽다.

 지금 뇌과학연구소 1층에는 목각으로 만든 모형이 전시돼 있다. 진품보다 더 깨끗하고 멋있어 꿈에 보아도 놀랄 만큼 잘 복원 된 것이다. 유리로 씌운 모형은 그럴 듯해 진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러나 진품을 보는 것과는 다르지 않겠는가. 후배들은 자신의 족적을 잘 관리하기를 바란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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