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교수연구비 나눠먹기 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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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참 희한한 일도 다 있다.하도 돈을 달라고 해서 주겠다고 하니 이젠 안받아 가겠다는 것이다.요즘 경제기획원 예산실에선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 교수들이 연구비 차등지급방식을 거부하고 종전대로 똑같 이 나누어 달라는 요구는 우리나라 대학의 시계가 세계 대학들과는 달리 거심로 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교수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이렇다.연구활동과 실적은 수치화하기어려워 이것을 기준으로 연구비를 지급할 경우 여러가지 雜音과 분란이 일어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따라서 올해 증액된 연구비(1백88억원)도 전처럼 똑같이 머릿수 대로 나 누어 달라는 주장이다.
국립대 교수들은 지급방식을 종전대로 환원하지 않으면 연구비를타가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5월 중순에 접어 들도록 1백88억원이란 거액이 한푼도 지출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배정된 예산이 쓰이지 않고 不用額으로 처리되는 것을예산당국이 다소 곤혹스러워 한다는「약점」도 알고 있는 듯하다.
불용액은 감사원의 단골 지적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심히 연구하는 교수나 그렇지 않은 교수나 연구비를 똑같이 나누어 가지자는 발상은 극히 나태하고 위험스럽기까지 하다.적당히 일하고 좋은게 좋다는 식의「적당주의」가 이런 행태로나타났다는 것이 기획원의 시각이다.
우리나라는 대학생들이 공부 안하기로 유명하지만 교수들 역시 이런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연구활동을 다소 소홀히 해도 별탈없이 교수직에 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나눠 먹기식 연구비 관행도 이런 풍토에서 배양된 것이다.
연구비 배정에 관한 자율권을 부여받은 直選총장들도 교수들의 반발을 두려워해 주어진 자율권을 기꺼이 포기하고자 한다는데,그저 잘못 전해 들은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이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국립대학들의 현주소라면 서글프다.연구비 균등배분이라는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관행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교수님」들이 새로운 代案도 내지 못하고 그저 옛날식대로 하자고 떼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대학자율화와 선진대학은 요원하기만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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