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지참금(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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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문 해외토픽에 등장하는 단골기사의 하나가 결혼지참금을 적게 가져온 인도여성의 수난이다. 사이예드 인도 내무장관은 최근 작년 한햇동안 지참금 때문에 살해당하거나 자살한 신부가 약 5천명이라고 발표했다.
인도는 이미 61년에 지참금 금지법을 제정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84년에는 이 법을 더욱 강화해 최고 종신형까지 처하도록 했지만 뿌리깊은 악습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마드라스시의 교외 빈민가에서 태어난 가네시아는 한달 7백루피(약 5만원)를 버는데 18세된 여동생을 시집보내는데 필요한 지참금 2만루피(약 1백42만원)를 구할 수 없어 끝내 자기 왼쪽 콩팥을 팔아 이 돈을 마련했다(중앙일보 94년 1월23일자).
결혼에 관한 우리나라의 예법은 점잖은 편이었다. 「앙혼은 하지 않는다」는 기개높은 선비정신이 있었고 처가에 기대는 남자를 불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우리의 결혼풍습이 최근 몇년사이에 급격히 악화,또는 타락되고 있어 이제는 사회문제로까지 되고 있다. 신랑집에서 공공연히 거액의 예물을 요구하고 신랑이 고시라도 합격했거나 의사라도 되는 경우엔 소위 「세가지 열쇠」를 요구한다는 세태가 되고 말았다. 대개의 경우 신랑집안의 이런 「물욕」의 중심인물은 시어머니다.
11일 서울고법이 지참금이 적다고 며느리를 구박해 결혼이 깨지게 만든 시어머니에게 위자료를 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것은 최근 세태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 며느리는 3백만원짜리 다이아반지,60평짜리 빌라,외제일색의 가전제품,5천만원어치의 예물을 들고 시집갔는데 시어머니는 적다고 며느리를 학대했다.
『5천만원도 돈이냐,1억5천만원은 가져와야지』라고 닦달했다는가 하면 아들의 해외출장비로 1천만원을 친정에서 얻어오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원만한 결혼생활을 배려해야 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으므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구박받는 며느리들에겐 기분좋은 쾌보요,구박하는 시어머니들에겐 경종이 되는 판결이다. 앞으로 예물이나 지참금으로 천하고 저속하게 구는 시어머니는 고소당할 것을 각오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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