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부 매듭 슬슬 풀리나/“위축벗고 과감한 투자” 자신감/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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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율촌공단 승인등 제재풀기 신호탄 해석/재계 “계속 규제는 국가경제 보탬 안된다”/정치권 반응은 아직 무덤덤
「정주영 없는 현대」­.
법인 현대그룹과 자연인이자 공인의 정주영 명예회장을 「별리」시키는 조심스런 기업활동이 하나 둘 연이어 나오면서 서서히 굳히기에 들어가고 있는 현대의 조마조마한 변신이다. 지난 3일 정 명예회장의 전격 은퇴선언·출국이후 현대는 「정상기업활동」에 한발짝 두발짝 다가서고 있다. 정씨 없는 「현대호」는 9일 사장단 회의에서 「과감한 투자」 계획을 세워 나간다는 방향으로 첫 조타하고 「장고」끝에 이를 발표했다.
현대그룹은 또 율촌 공단에 오는 7∼8월께 자동차공장을 짓기로 했으며 중국 장춘의 철도건설에 참여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현대는 4개 금융기관과 1천1백여억원에 이르는 대출을 받기로 계약서를 작성해놓고 있기도 하다.
정작 이같은 현대의 행보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아직까지 무덤덤하다.
경제부처의 고위관료들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 정부가 현대그룹의 기업활동을 가로막고 있었느냐』며 「딴소리」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지난 3일의 출국 기자회견 정도로 「화해」 운운하는 것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현대의 조심스런 기업활동 복귀도 따라서 아직은 살얼음 위를 걷는듯 조심스럽기 짝이 없고 재계도 이같은 점을 눈여겨보고 있는 상태다.
정씨로부터 전권을 위임받는 정세영회장은 9일 사장단 회의에서 『현대그룹은 지난 2∼3년간 투자문제가 그룹의 가장 큰 고충의 하나였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각 회사는 이제까지의 심리적 위축에서 벗어나 진취적이고 과감한 투자계획을 세워 경영을 일신해달라』고 당부했다.
현대그룹의 한 임원은 『정 회장의 지시에는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담겨있는 것으로 본다』면서 『그러나 투자부진이 정부탓만은 아닌 만큼 각 계열사가 알아서 과감한 투자를 해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도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과감한 투자와 함께 울산의 주요사업장에서 분규없이 임금협상을 타결짓도록 하라고 강조한 것도 노사분규 없는 현대를 만드는 것이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는 점을 강하게 의식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현대 문화실측이 이날 아침 열린 사장단회의 내용 공개여부를 놓고 고심하다가 오후 늦게서야 보도자료를 돌린 것도 정 회장의 발언이 정계 등으로부터 어떤 반응을 들을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현대측은 현대자동차 율촌 공단 입주에 장애가 돼왔던 공장부지 상한제한을 정부가 해제키로 했다는 방침이 전해지자 크게 반기면서 아직 현안인 현대중공업 등 3개 계열사의 증자도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소리없이 현대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아 가겠다는 뜻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물에 물 탄듯,술에 술 탄듯」 현대 문제의 매듭을 풀어가는 것이 옳은 현대 해법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아무튼 「정치인 정주영」과 「기업 현대」를 따로 생각하는 것이 정부나 국가경제 모두에 보탬이 되는 것은 더이상 말할 나위 없다.
정씨는 요즘 동경에 머물면서 스미토모 상사 회장 등 친구들을 만나 골프를 치거나 서산농장에서 생산한 쌀을 일본에 수출하는 방안 등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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