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외규장각 고서 못주겠다”/다른 문화재와 「교환임대」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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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문가/TGV 판매용 생색에 정부 과잉홍보
지난해 9월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방한 당시 프랑스측이 돌려주기로 한 외규장각 도서 3백여권 반환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으로 알려져 학계에서 반발이 일고 있다.<관계기사 5면>
7일 외무부와 관련학계에 따르면 프랑스측은 『프랑스 법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문화재를 외국에 반출할 수 없으며 한국에는 외규장각 도서가 영구임대형식으로 반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애당초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측은 또 『미테랑 대통령 방한 당시 정상회담에서 「교류방식」으로 서적을 교환하자고 했을뿐 영구임대한다는 표현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측은 이같은 프랑스측의 입장에 따라 외규장각 도서는 계약기간을 계속 늘려 사실상 영구반환받고 프랑스측엔 2년마다 다른 도서를 바꿔가며 빌려주는 방식을 제안했으나 프랑스측은 「동등한 조건」을 요구하며 거절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측은 『시한부 임대해준 책의 계약기간을 계속 늘리는 것은 결국 영구임대이므로 한국측도 외규장각 도서에 견줄만한 다른 고서적 3백여권을 우리에게 시한부 임대하고 똑같이 계약기간을 연장하자』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상호 영구임대 방식은 약탈당한 문화재를 반환받기 위해 또다른 문화재를 줘야 한다는 의미여서 당초 미테랑 대통령 방한 당시 선린의 차원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한다던 내용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다.
이와관련,학계에서는 『미테랑 대통령 방한 당시 프랑스가 고속철도인 TGV 협상을 의식해 외규장각 도서반환이란 외교적 제스처를 썼는데도 정부가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한채 도서가 반환되는 것으로 잘못 홍보했으며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외교선전에 휘말린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 분개하고 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국사학)는 『프랑스측안은 일단 한국측에 책을 줬다는 생색만 낸뒤 다시 찾아가겠다는 의미』라며 『약탈당한 문화재를 되돌려 받기 위해 현재 보관중인 다른 문화재를 줘야 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백충현 서울대 교수(국제법)도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갔다는 것은 문서로 확인되기 때문에 국제법상으로 볼때도 반환받는게 당연하다』며 『약탈사실에 대한 문서 증거가 없는 다른 문화재들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프랑스측의 주장은 억지』라고 말했다.
한편 외무부는 지난주 프랑스에 실무회담 개최를 요구할 예정이었으나 주무부서인 문화체육부가 「최소한 영구임대 형식으로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히 표시하고 학자들의 반발도 거세 회담개최를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중인 외규장각 도서는 조선소의 왕실 제례 등을 기록한 「의궤」류 등 3백여권으로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에서 약탈해간 것이다.<예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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