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청소로 끝낸 대학로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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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휴일과 노동절이 겹친 1일 오후8시 대학로에는 난데없는 청소바람이 불었다.
『노동자들의 축제가 쓰레기만 잔뜩 만들어 냈다는 부끄러운 소리를 듣지 맙시다.각자 쓰레기를 치우고 깃대는 길 좌우편에 모아 놓읍시다.』 노동절기념 집회를 마치면서 주최측이 마지막 정리를 부탁하는 방송을 하자 학생과 노동자 1만5천여명이 일사불란하게 쓰레기를 줍고 들고왔던 만장.쇠파이프등을 한쪽으로 쌓아놓기 시작했다.
『예년에는 시위가 났다하면 무조건 가게문을 닫고 들어갔었는데오늘은 오히려 음료수가 더 잘 팔리네요.시위대가 청소까지 하는건 처음 봅니다.』 대학로 상인 崔俊鎬씨(40)의 말이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경찰은 웬만한 시위는 모두 허락했고 시위문화 역시 크게 달라졌지만 학생.노동자가 1만명 넘게 모인 집회에서 충돌은 커녕 청소까지 하는 분위기로 바뀐건 분명 커다란 변화였다.
이에앞서 동국대에서 열린 「제104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를 마치고 오후4시부터 2시간동안 이어진 가두시위도 색다른 모습이었다.
동국대~을지로~대학로로 이어진 6㎞구간의 가두행진으로 일시적인 교통혼잡은 있었지만「혼란」은 없었다.아들을 무동태운채 부인의 손을 잡고 행진하는 30대 노동자의 모습도 보였고 50대의한 노동자는 뼈마디 굵은 손으로 태평소를 불며 시위대를 따라다녀 눈길을 모으는등 모두가 한결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경찰은 시위대가 잘 행진할수 있도록 곳곳에 교통순경을 배치,이들의 행진을 도왔다.
경찰의 협력과 한결 높아진 집행부의 의식 덕분에 시위대는 가두행진을 하면서 구호를 외치다 30분마다 휴식을 취하는 여유를보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풍물패들이 꽹과리와 장고를 두드리며 즉석 공연으로 볼거리를 제공했고 미소를 지으며 이 광경을 캠코더로 찍는 시민들과 외국인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띄였다.화염병과 최루탄의대결이 사라진 시위현장-.우리사회의 성숙을 확인 하는 또 한번의 계기였다.
〈兪翔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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