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온 위기” 정국걱정/필리핀 가는 김대중씨의 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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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통령에 직언할 사람 없는게 문제
이기택 민주당 대표가 4월초 동교동 자택으로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을 찾아갔다. 1월초 하례이후 4개월만의 만남이었다. 여러방문객 속에 섞인 이 대표가 인사를 하자 김 이사장이 대뜸 한마디를 던졌다. 『미국 가신다는데 가더라도 오래 있어서는 안되겠던데요.』
당시의 현안은 UR 이행계획서 수정과 기관장 사전선거운동 정도였다. 최대쟁점인 상무대 의혹사건은 본격 대두되기 전이었다.
김 이사장의 이같은 「완곡한 출국 반대」 의견은 그후 전개되는 시국과 맞아떨어졌다. 이 대표는 상무대 비리조사를 무릅쓰고 출국했다가 이회창 전 총리 전격경질 사건이 터짐에 따라 당초의 12박13일짜리 일정을 6박7일로 축소하고 부랴부랴 귀국했다.
김 이사장은 최근들어 비공식적으로나마 김영삼정부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것으로 전해져 관심을 끌고 있다.
김 이사장은 최근 이회창 사퇴 정국이 도래한후 민주당의 한 지구당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김영삼정부의 위기가 생각보다 빨리 오고 있다』는 생각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인사는 『김 이사장이 위기의 근본원인으로 「김 대통령 주변에 직언할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대통령 주변에 나이나 경험이 비슷한 사람이 전무한 점도 음미해볼만하다』고 나름의 촌평을 곁들였다.
DJ의 오랜 측근인 한 의원은 『김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정보보고가 상당부분 왜곡되고 있으며 실례로 이회창 전 총리의 경질에 대해서도 국민여론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쪽으로 보고서가 올라간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처럼 김 대통령 주변의 언로가 왜곡되고 있다는 견해가 김 이사장의 견해와 동일한 것이냐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함구했으나 『(아·태)재단에는 국내외의 동향이 모두 들어오고 있다』고 밝혀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아·태재단의 팩시가 해외에서 들어오는 동향 보고의 폭주로 통화중인 시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동교동계의 「업」인 설훈 부대변인이 26일 이충범 전 사정비서관의 금전수수 혐의를 거론해 주목된다. 또다른 측근의원은 『선생님(김 이사장)도 대통령 측근에 대한 시중의 여러 얘기에 대해 걱정하시더라』고 전했다.
이런 와중에 김 이사장은 27일 아시아 평화군축공존회의에서의 연설을 위해 필리핀으로 날아갔다. 5월5일에는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오찬연설을 위해 미국에 간다. 한 측근은 『두 연설중 하나에서는 한국내 개혁추진의 성과와 문제점에 대해 짧게나마 언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김현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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