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가계부보다 허술한 재정통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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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 재정통계는 나라 살림의 기본이 되는 지표다. 재정정책과 예산 편성의 근간이 된다. 그런데 이 통계가 17조4000억원이나 잘못 집계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재정경제부는 상반기 재정수지를 6조1000억원 적자라고 발표했다. 사실은 11조3000억원 흑자였다. 또 상반기에 재정의 62%를 집행했다고 밝혔으나 사실은 53.6%만 집행했다.

 재경부는 올해 새로 가동한 디지털 예산회계 시스템의 오류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공무원 인건비를 잘못 계산했다는 것이다. 3년 동안 6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개발한 시스템이 이 모양이다. 하지만 새 시스템 탓으로 돌리기에는 사안이 너무 황당하다. 틀린 규모가 워낙 크고, 적자와 흑자가 뒤바뀌었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실무자부터 부총리까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니 부끄럽지 않은가. 언론에서 수치가 이상하다고 지적해도 “맞다”고 우겼다고 한다. 이 정부는 재정이 적자인지, 흑자인지도 모르고 나라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집안 살림에서도 한 소리 들을 일이고, 민간 기업에서라면 당장 보따리를 싸야 할 게 틀림없다.

 정부는 이런 통계를 국제적으로 공표했고, 재정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짤 때 기초자료로 활용했다. 재경부 차관은 “상반기에 재정의 62%를 집행해 경기회복에 한몫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엉터리 통계인 줄도 모르고, 자신들 입맛대로 해석한 것이다. 경제정책을 얼마나 주먹구구로 운용하는지 보여 준 셈이다. 다른 정책은 괜찮은지, 다른 정부 통계는 믿어도 되는지 걱정이 앞선다. 실제로 올 세수 추계가 11조원이나 틀린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신뢰가 땅에 떨어졌는데도 이 정부에는 사과하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그저 새 시스템 때문이라는 구차한 변명이 있을 뿐이다. 국정브리핑을 통해 사소한 일에도 항변하던 그 많은 공무원은 다 어디로 갔나. 나라 곳간을 자기 호주머니 돈처럼 신경 쓰고, 아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나. 이러고도 알려주는 거나 쓰라는 식의 정부 홍보정책에 순응하랄 것인지 궁금하고 암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