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여성 권익 적극보호 의미/법원 「성희롱」 첫 유죄판결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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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성적농담·가벼운 접촉 묵인 관행에 쐐기/여성 사회진출 늘어난 시대 변화도 반영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법적 심판대에 올라 관심을 모았던 서울대 신모교수(52)의 성희롱 시비사건에 대해 법원이 이를 「성희롱」으로 인정했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그동안 직장에서의 성적 농담이나 가벼운 접촉 등을 문제삼지 않았던 관행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제기될 경우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8월 신 교수의 조교였던 우모씨가 『신씨가 여러차례에 걸쳐 뒤에서 포옹하는 자세로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손과 어깨·머리를 만졌으며 이를 거부하자 보복조치로 조교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교내에 붙이면서 비롯됐다.
총학생회와 대학원자치위원회 등에서 진상규명을 학교측에 요구하며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학내 사태로 발전됐으며 신 교수는 이를 맞받아 『우씨가 재임용 탈락에 대한 불만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우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이 사건의 쟁점은 크게 두가지. 우선 우씨가 주장하듯 신 교수가 그런 행위를 한 적이 있느냐는 객관적인 사실 인정여부와 만약 사실일 경우라도 이같은 행위를 과연 성희롱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간 열린 네차례 재판에서 우씨는 『자신은 키보드 조작에 익숙해 있는데도 신 교수가 키보드 조작을 빌미로 등 뒤에서 감싸안는 자세로 몸을 밀착해 접촉했으며,컵을 받으면서 손을 잡고 놓지않거나 자신을 불러 세워놓고 자신의 몸매를 불쾌하게 아래위로 훑어보곤 했었다』며 신 교수의 행위가 명백한 성희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 교수측은 성희롱 사실을 전면부인하면서 『만약 그같은 행위가 있었다면 그것은 교육중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런 행동이거나 친밀감의 표시일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번 판결은 무엇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크게 늘고 있는 시점에서 사법부가 사회변화와 이에 따른 여성들의 권익보호에 적극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계는 이번 판결이 직장여성들의 경우 남성상사·동료들로부터 성적수치심을 유발하는 언행을 당해도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온 관행에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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