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기금/현행 남북협력기금과 별도/수조원 규모 조성방법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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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반발 배려로 신중처리/국민합의 전제돼야
정부가 남북통일이 실현될 때 긴급비용으로 사용할 통일기금 조성에 본격 나서기로 한 것은 「통일」이 구호가 아닌 현실로서 예상밖으로 빨리 닥칠지 모른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사실 정부는 출범초부터 그 필요성을 절감해왔으나 통일기금 조성 과정에서 수반될 안팎의 문제점을 고려,결심을 미뤄왔다.
통일기금 조성에 따르는 문제란 우선 예상되는 북한의 반발이다.
세습체제를 둘러싼 내분과 계속되는 극심한 경제난 등으로 체제유지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북한이 남한의 통일기금에 시비를 걸고 나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대통령이 되풀이 해 부인하고 있음에도 북한으로선 한국의 이러한 조치들을 흡수통일 가능성으로 해석할 소지가 있다.
국내적으로는 이 천문학적 비용을 정부예산으로 마련하기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국민성금이나 통일채권 형식의 조성이 불가피한데 과연 제대로 이루어지겠느냐는 의구심이 있었다.
준조세 성격의 기부금 모금을 극구 저지해온 새정부로서 북한에 대한 자극을 피하면서 이를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상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 정세 등을 면밀히 분석할 때 통일기금이 더이상 구상차원의 일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최근들어 부쩍 늘고 있는 북한주민들의 북한 탈출기도와 집단소요 등이 주요 판단자료로 제시되고 있다.
한마디로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안보관계자들은 북한의 「서울 불바다」 운운이 실상은 남한을 겨냥하기보다는 북한주민들의 통제를 위한 내부용 성격이 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단 기금을 조성하게 되면 소요내용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것부터가 쉽지 않다.
북한을 의식해 기금조성을 위한 홍보조차 가닥을 잡기가 수월치 않다. 정부는 우선 통일전후의 명분있는 긴급사업을 기금으로 충당한다는 생각이다.
기금규모도 아직은 수조원 정도라는 막연한 수치 차원이다. 천문학적으로 소요될 통일비용중 어디까지를 통일기금에서 충당하고 지원하느냐부터가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연차적으로 기금을 조성하되 2∼3년 사이에 최소한 5조원 규모는 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말하기도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조성방법도 큰 문제다.
정부예산으로 「몇년」후를 대비,막대한 금액을 출연해 나가기는 어려운 상태고,성금내지 통일채권방법은 김 대통령이 강조한 준조세 성격으 기부금 금지조항에 어긋나므로 망설이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내 일각에선 통일기금을 김 대통령의 기부금 수수금지 방침과 연계시키는 것은 단선적 발상이라며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한 성금을 통한 통일기금 조성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통일기금 조성과는 별도로 곧 전개될 남북대화의 활성화 시기를 대비하여 남북 협력기금도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는 지난 90년 8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과 더불어 제정된 남북협력기금법에 따라 91년 2백50억원,92·93년 각 4백억원 등 1천50억원을 출연해 남북교역·협력사업 등의 지원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협력기금중 서울은 91년의 남북 탁구 단일팀 구성 및 92년의 고향방문사업 지원,91년 북한에 대한 쌀 5천t 지원의 손실보전용 등 28억원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여러 연구단체 등이 아이디어 차원에서만 제시했던 통일기금의 필요성이 북한 내부사정의 변화로 정책차원으로 이전되어 구체적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만큼 통일의 가능성이 높아 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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