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광장>법은 사랑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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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법이 무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하지만 영국의 시인WH 호든은 법은 사랑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처럼 법은 아무곳에서나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를 공격한다사랑처럼 법은 강요할 수도없고 도망칠 수도 없다 사랑처럼 법은우리를 자주 울린다 사랑처럼 법은 대개 지키지 못한다 사랑은 달콤하지만 법은 그렇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법보다 무섭고 쓰디쓴 사랑도 있다.법 없이는 살아도 사랑없이는 못산다는 사람도 있겠지만,그 반대로 사랑없이는 살아도 법 없이는 못산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마다 사랑하는 방법이 다르듯 법체제 역시 그 나라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서 다르다.데비드 흄,존 로크,윌리엄 제임스 같은 철학자를 배출한 英.美의 보통법은 경험주의적이고 有名論적이다. 그래서 미국의 저명한 대법관 흄스판사는「법의 생명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이라고 말했다.그에반해 데카르트.칸트의 후손들이 만들어놓은 법전은 이성주의적이고 실체주의적이다.
형사소송의 절차도 영미법과 대륙법은 서로 다르다.영미법의 형사소송이 피고의 변호인과 검사 사이에 벌어지는 「다툼」이라고 한다면 대륙법의 절차는 판사가 적극적으로 사건심리에 참여하는 심판의 형식을 갖는다.배심원을 두는 영미법의 재판 은 다투는 주인공들과 배경에 코러스가 등장하는 고대 희랍의 비극을 연상시킨다. 그와달리 대륙법의 재판은 베르디의 돈 카를로스에 나오는중세의 종교재판을 생각하게 한다.그러나 이 이질적인 두 법질서는 서로의 장.단점을 선택적으로 보완하여 현재는 많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영미법은 대륙법의 진실 규명에 대 한 강조를,대륙법은 영미의「절차에 대한 배려」를 서로 배우고있다.우리는 역사의 기구함 때문에 일본의 법을 전수받았다.일본 역시 그나름의 역사적 우여곡절로 인해 대륙법을 채택했다.대륙법이 한국사람의 기질에 과연 적합한 것인가를 묻기에 는 우리의 법질서는이미 우리의 삶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영문 모르고 경찰에 연행되어 소위 대기실이라는 곳에서억울하게 오랜시간동안 고생했다는 사례를 전해 들을때 우리도 이제「절차의 正義」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이유도 모른채 법의 공격을 받는 것은 원 하지않는 사랑에빠지는 것만큼 지극히 난감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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