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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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길고 긴 겨울(14)오늘따라 바다는 맑게개어 있었다.아침햇살이 맑다는 생각을 하며 명국은 세면장을 나왔다. 여기야 겨울에도 풀들이 자라고,꽃도 피니까.그런 생각을하며 잠깐 명국은 고향의 겨울을 떠올렸다.한번 내린 눈은 녹을줄을 모르는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던가.거기다 대면이거야 추위도 아니지.아침 햇살이 겨울을 느낄 수 없게 맑다는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서던 명국이 성식을 보았다.
『이제 나오냐?』 『빠르시네요,벌써 일어나시고.차암,아저씨.
어제 절 보자고 하셨지요.』 『저녁 먹고 기다렸는데,안 보이더구나.』 『장난질 좀 친다구 몰려나갔다가.』 성식이 부숭부숭한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저,눈꼽이나 떼고 바로 나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실래요.』『바쁠거 있냐,그러마.』 아침 잠을 깬 사람들이 하나 둘 세면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그들을 피해서 명국은 채탄 갱도 쪽으로나가는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갈매기가 울며 날아갔다.
세수를 마치고 나온 성식이 옆에 와 서며 말했다.
『어제는 제가 그만….』 『뭘 했는데?』 『젊은애들이 그냥 밤바람이나 쐬자고들 해서 저쪽을 좀 어슬렁거렸지요 뭐.』 성식이 가리키는 쪽은 술집과 유곽들이 있는 곳이었다.그 밑으로는 이따금 극단 패거리들이 들어와 신파극을 하고 가기도 하는 극장이 있었다.
『이 녀석들 봐라.너희들 겁도 없이 그렇게 나다니다가 어쩔려구들 그래.』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그래도 계집냄새는어디서 맡아 볼까 하고 기웃거리질 않나.명국의 눈빛에 성식이 움찔하며 말했다.
『가와구치 상하고 친한 애가 하나 있어요.그래서 아마 가와구치한테 거기 구경을 좀 시켜 달라고 꼬드겼었나 봅니다.그런데 뭐,말짱 헛거였어요.저쪽으로 올라가 보지도 못한 걸요.』 『왜?』 『어제 갑자기 섬으로 탄광에 높은 양반들이 들어왔나 보던데요.그래서….』 『그래.그쪽엔 얼씬도 못하게 하더냐?』 성식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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