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선관위가 무서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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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9천여명이 감시… 정치생명 좌우하는 「실세」 부상
『선거관리위원회를 조심하라. 선관위가 더이상 종이 호랑이가 아니다.』
새 선거법 제정으로 선관위의 위상이 한층 강화되자 정치인들 사이엔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실질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새로운 권부로 탈바꿈했다며 새삼 경계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회관에선 요즘 『호랑이 잡는 담비,정치인 잡는 선관위』란 유행어가 생겨날 정도다.
선관위는 새 선거법이 통관된후 벌써 서울시내 4개 구청장을 비롯,김영삼대통령의 최측근인 최기선 인천시장·박태권 충남지사의 사전선거운동 혐의를 현장에서 전격 적발해냈다. 최근에는 또 반형식의원의 사전선거운동 혐의도 행위가 있자마자 즉각 적발했다.
벌써부터 정치성 집회가 열리는 곳이면 으레 완장을 두르고 비디오카메라를 둘러멘 선관위 직원과 만나게 된다. 사전선거 금지기간이 선거일 2년전부터 적용되는 만큼 잦은 선거를 감안할 때 이제 선관위는 연중 상시감시활동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선관위는 적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4명의 구청장에 대해 「주의」조치를 내렸다. 민주계 실세인 최 시장에 대해서도 「경고」조치를 내렸다. 박 지사와 반 의원에 대해서도 조만간 최소한 「경고」 이상의 조치는 내려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같은 선관위의 힘은 새 선거법속에 잘 명시돼 있다.
우선 후보는 예금계좌에 의해서만 선거비용의 수입과 지출을 할 수 있게 되어있고 이를 선관위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를 받은 선관위는 관련자에 대해 보고 또는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특히 선관위는 필요할 경우 금융실명제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장에게 후보 및 그 가족과 선거사무장 등의 금융거래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가지 확보했다.
대통령의 거듭된 「깨끗한 선거풍토 정착」 주문과 확고한 의지표명도 선관위 입장을 크게 강화해주고 있다. 취임초부터 선거혁명을 주장해온 김 대통령은 측근들이 물의를 일으키자 다시 한번 『법집행의 철저를 기하겠다』고 역설하곤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천명했다.
선관위는 이달부터 공익근무요원 등 9천여명의 감시요원을 투입,사전선거운동을 감시하는 등 이번에야말로 공명선거의 초석을 놓는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한군데서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만큼 바늘구멍도 허용치 않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결의를 다졌다.<김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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