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신당 ‘동원 선거인단’은 사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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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주신당 경선을 위해 모집한 국민선거인단 90여만 명 중 약 3분의 1이 가짜로 드러났다. 이중 등록, 잘못된 주민번호, 결번 전화번호 등이다. “선거인단 등록이 내 의사가 아니었다”는 이도 4만6000여 명에 달했다. 국민이 보는 앞에서 국민이란 이름으로 대규모 사기극이 벌어진 것이다. 위장(도로 열린우리당)이 흥행 무리수(선거인단 수백만 명)를 부르고, 급조된 편법(무더기 대리접수)이 주자들 간의 동원 경쟁을 낳았다.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와 직접선거에 대한 중요한 위협이다. 당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선거인단 60여만 명의 대부분도 형식적인 하자만 없을 뿐 본질적으론 동원된 사람이다. 어떤 주자를 지지하는 상태에서 선거인단이 되니 일종의 사전 투표라 할 수 있다. 정책·경력에 대한 경쟁을 통해 후보의 우열이 가려지는 게 아니라 미리 세와 조직·편법을 동원해 만들어 놓은 선거인단이 판을 좌우하는 것이다.

10%도 안 되는 민주신당 지지율을 고려하면 ‘선거인단 수백만 명’은 애초 비현실적인 제도다. 자발적 선거인단이 어떻게 수백만이 되겠는가. 이는 급조된 당이 저조한 인기를 만회하려 만든 흥행용 편법이다. 당은 한탕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경선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동원’의 냄새를 빼는 것이다. 2002년 민주당 선거인단 7만 명은 대의원·당원·일반 국민 2:3:5로 구성됐다. 일반 국민 선거인단은 신청자 중에서 추첨으로 선정했다. 그러니 주자들이 동원했어도 추첨이란 과정에서 여과됐으며 결과적으론 부작용이 많이 줄었다.

얼마 전 경선을 치른 한나라당의 국민선거인단은 무작위로 뽑힌 사람들이다. 그러니 동원 잡음이 없었다. 민주신당은 이런 방법을 차용하거나 아니면 여론조사 같은 방법으로 보완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리 접수는 지양해야 한다. 자신이 직접 접수할 성의가 없는 이가 무슨 선거인단 자격이 있는가. 동원된 표는 정통성을 의심받게 된다. 경선이 치러지는 과정이나 이후에 두고두고 말썽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