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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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진섭은 날품팔이꾼이었다. 동료들과 일을 하다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면서 말했다. 『내가 만약 부귀를 얻게 된다면 함께 고생한 자네들을 결코 잊지 않으리.』 품팔이 주제에 웃기는 친구군 하고 동료들은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나 그의 말은 헛되지 않아 몇년후 왕이 되었다. 약속대로 그는 옛날의 품팔이 친구들을 대궐로 불러 환대했다. 대궐에 모인 옛날 친구들이라야 경륜이 없고 벼슬을 줘도 수행할 능력도 없었다. 그저 왕에게 바른 소리,싫은 소리도 하고 옛날시절 흉도 보는 태도를 취하게 되자 이들의 출입을 금지해 버렸다.
주변에는 아첨꾼만 늘어나고 충실한 고언을 하는 인물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진섭의 왕노릇도 6년이 못돼 끝나버렸다.
역사가 사마천은 진섭세가에서 측근과 인사가 중구난방이면 나라가 흔들릴 수 있다는 교훈을 알려주기 위해 굳이 진섭이라는 미천한 군주를 대상으로 삼았다고 본다.
진섭의 예에서 우리는 통치자의 측근은 개개인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야지 어려운 때를 같이 지냈다는 과거의 정리만으로 중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알게 된다. 또 일단 측근으로 기용되면 공정성에 입각해 부하직원들을 거느리고 통솔해야만 측근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이 살아나지 그렇지 못하면 그 누가 바로 통치자에게 직결된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는 두가지 사례를 동시에 보고 있다. 하나는 정부 요소요소에서 핵심적 일을 맡고 있으면서도 좌로 갈걸 우로 가고,앞으로 갈걸 뒤로 가서 전체를 흔들고 혼란에 빠뜨리는 일을 저지르는 측근이 없는가 하는 의문이다. 일개 대사로 있는 사람이 정부의 기본적 외교노선과 정책을 크게 흔드는 발언을 했다가는 서둘러 취소하는 해프닝을 보이니 이런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또 하나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자신에게 튈 불똥을 미리 막기 위해선지 전혀 무관한 경찰서장을 직위해제까지 한 또다른 측근의 처사다. 직위해제된 서장은 전직 야당 당수 집을 사찰했던 일과는 전혀 무관한데도 현직 서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물어 직위해제 시켰다. 그러고서야 도대체 어느 누가 인사의 공정성을 믿고 책임을 다할 각오를 할 것인가.
측근의 잘 잘못은 사실과 달리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장될 수도 있다. 그만큼 그 자리가 지니는 비중과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자중자애가 그래서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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