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경제외교/비동맹·북방 순방외교등 비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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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정치현안에 「양념격」 머물러/「명분」 우선… 차관 보따리 풀기도/재계/“동승만도 실익”… 동행 줄이은 적도
대통령은 경제만 생각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의 순방 외교도 마찬가지여서 경제적인 득실의 잣대로만 잴 수 있는 국사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지금껏 어느 대통령이고 다들 경제외교의 중요성을 틈나는 대로 강조했지만 실상 경제외교를 본격적으로 펼친 대통령은 없었다.
대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인 역학관계나 대내 정치적인 목적에 항상 비중이 더 실려있었고,국가간의 경협 내용이 순방외교의 성과로 홍보되곤 했지만 대개는 기왕에 진행되고 있던 상담 등을 한데 묶어 구색용으로 발표하는 「양념」 격이었다.
82년 8∼9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프리카 4개국을 순방했을 때도 비동맹외교라는 명분외에 정부나 기업 모두 이렇다할 경제적인 성과를 찾지 못했다.
일부 기업이 정부의 독려로 순방외교의 성과를 가시화하기 위해 자원개발과 유통사업을 추진했으나 대부분 중도하차 하거나 손해만 보고 물러났다.
당시 대통령을 수행하고 돌아왔던 한 고위 관료는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당시에는 사절단이 묵는 호텔 방문을 직업여성이 노크하는 것을 보고 경협이 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 소련 방문은 북방외교의 길을 뚫는 대가로 총 30억달러 규모의 차관 보따리를 풀어 놓고 온 외교였다.
30억달러의 효용은 북핵 문제의 와중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봄직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리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처음에 약속했던 30억 달러중 거의 절반인 14억7천만달러를 이미 구 소련에 제공했고,3억8천8백만달러의 연체금을 안고 있다.
재계 인사들의 대통령 수행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해외 방문이 꼭 경제적인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닌데도 내로라 하는 재계 총수들은 지금까지 꼬박꼬박 순방외교에 따라 나섰다.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한비행기를 타고 가며 때로는 캐주얼한 차림으로 칵테일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충분한 투자와 수익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 전 대통령은 기업인들의 민원성 발언을 듣고 즉석에서 경제수석에게 『귀국하면 곧 알아보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김영삼대통령의 일본·중국 방문도 워낙 북핵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라 경제적인 성과는 그리 빛이 나지 않는다. 예컨대 중국에 제공하기로 한 4천만달러의 대외경제 협력기금은 대통령의 방중에 발표 시기를 맞춘 것이다.
그러나 재계 인사들의 대통령 수행은 그 모양새가 크게 달라졌다.
이번에 북경에 들어간 기업인들은 처음에는 수행이 금지되었다가 따로 따로 가는 「간접수행」 형식으로 청와대가 방침을 바꾸는 바람에 이미 예약이 끝난 27일자 북경행 비행기표를 구하느라 땀을 흘리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은 이달 초 현대그룹의 초청을 받고 개인자격으로 울산을 방문했고,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노구를 이끌고 고속전철의 수주를 위해 지난해 방한 했었다.
『국익에 도움이 되면 세일즈맨이 되어 지구촌 어디라도 쫓아가겠다』고 한 김 대통령도 앞으로 어떤 경제외교를 펼칠지 궁금하다.<남윤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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