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혁시시각각

떠나는 대통령의 예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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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누구나 인생의 한 시기를 마무리할 때면 숙연해진다. 학교를 졸업할 때, 군대에서 제대할 때, 결혼 직전, 한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이럴 때 관대해진다. 후배들에겐 진심 어린 덕담을 하고, 후임자를 위해선 크고 작은 배려도 한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물론 소수지만 다른 부류도 있다. 회사 판공비든, 정부 예산이든, 아니면 인사든 자기 입맛대로 해버리고 휙 떠나가는 사람들이다.

권력도 다를 바 없다. 어찌 보면 권력이야말로 그렇다. 대통령은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왕 대신에 만든 자리다. 민주사회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 권력이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 닉슨은 “꿀보다 달다”고 했다. 누구나 그걸 놓기 싫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위임을 받아 몇 년간 최상의 권리를 누렸으면 물러날 때 마무리도 잘 해줘야 한다. 그게 대통령으로서의 예의다.

요즘 하산 길에 나선 노무현 정부를 지켜보며 여러 생각이 든다. 임기 말 권력의 처신에 대해서다.

우선 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이다. 나는 회담 자체에는 적극 찬성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모양새가 좀 어색하다. 가장 좋은 건 누가 당선되든 차기 대통령이 임기 초기에 김 위원장을 만나 서로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 것이다. 그래야 남북관계 개선이든, 평화 정착이든 실질적 효과가 클 것이다. 한나라당도 정상회담에 찬성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물론 노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그래서 “나보다 차기 대통령과 회담하시라”고 말하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둘째는 노무현 정부가 기를 쓰고 밀어붙이는 이른바 취재 지원 선진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하기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정부는 집권 내내 미래보다는 주로 과거에 관심을 쏟아왔다. 과거사 파헤치기 따위에 진력해 왔다. 그래서인지 ‘선진화’ 같은 단어가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도 보였다. 그러더니 유독 언론에 대해서만큼은 ‘취재 선진화’를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기자실을 없애줌으로써 선진적인 취재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언론이 미워서 죽겠다. 그러니 권력을 놓기 전 어떻게 해서라도 해코지를 하고 떠나겠다.’ 기자들이 받아들이기엔 그게 노 대통령과 측근들의 생각 같다. 우리가 오해를 한 것인가.

하지만 언론이 노 대통령에게 항상 적대적인것만은 아니었다. 노 대통령 스스로 “방송이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대통령이 됐겠느냐”는 말까지 했다. 일부 진보 성향 신문들은 노 대통령의 큰 원군이었다. 그런데 지금 방송과 신문 할 것 없이 거의 전 언론사가 ‘취재 선진화’에 반대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노무현 정부의 ‘취재 선진화’는 정권이 바뀌면 끝이다. 모두 그걸 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취재 선진화’를 언론 탄압으로 규정했다. 여권도 마찬가지다. 여권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기자들이 뽑은 대통령 후보 1위일 정도로 언론 관계가 좋다. 여권 지지율 2위인 정동영 전 장관은 방송기자 출신이다. 이런 걸 모두 고려하면 노 대통령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여론조사에서도, 정치권에서도, 여론 형성층에서도 반대가 훨씬 많고 차기 정권이 출범하면 바로 폐기될 게 뻔한 정책이 ‘취재 선진화’다. 그런데도 국정홍보처를 동원해 마구 밀어붙이는 ‘임기 말 대통령 노무현’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이걸 보며 “역시 우리의 노짱”이라며 환호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노 대통령은 역발상의 정치인이다. 그걸로 성공해 대통령까지 됐다. 그러니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예단할 순 없겠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떠나는 대통령의 예의는 필요하다고 본다. 내 오기보다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언제나 더 중요하기 때문에.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