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현실서 꿈꾸는 이중생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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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18면

감각의 종류에는 전자기파의 자극에 반응하는 시각, 소리진동에 반응하는 청각, 휘발성 물질에 반응하는 후각, 수용성 물질에 반응하는 미각, 압력에 반응하는 촉각, 온도에 반응하는 온각과 냉각, 그리고 어떤 종류이든 매우 강한 자극에 반응하는 통각이 있다. 촉각·온각·냉각·통각을 묶어 피부 감각이라고 하고 다른 네 가지 감각과 더불어 오감(五感)이라 부른다. 현재는 이외에도 근육이나 힘줄에 분포된 심부감각, 내장에 분포된 내장감각, 직진 및 회전의 가속도에 반응하는 평형감각 등이 더 알려져 있다.

주일우의 과학문화 에세이-이미지에 걸린 과학 <11>

어떤 자극을 몸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복잡한 작용을 거쳐 중추신경에 전해졌을 때 그곳에서 일어나는 대응을 감각(感覺)이라고 한다. 감각이 생기기 위해서는 자극을 받아들이는 수용기, 자극이 수용기에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하는 감각기관, 자극에 의하여 수용기에 생긴 흥분을 중추신경에 전달하는 감각신경, 신호가 도달하는 대뇌의 표면이 모두 잘 작용해야 한다. 대뇌 표면의 신경세포가 신호를 받아서 흥분하면 감각이 생긴다. 그리고 그 감각을 조합하고 해석해 몸 바깥을 인식한다. 살아있는 생물체라면 모두 외부환경에 맞추어 반응을 하고 생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감각기관을 통해 밖과 소통하고 있다.

분신을 통해 경험하는 다른 삶
감각의 왜곡은 물컵 속의 빨대처럼 신호 자체가 뒤틀려 있는 경우 때문에 생기기도 하고 수용기, 신경, 대뇌로 이어진 과정에서 어느 한 곳이 정상적인 작동에서 이탈하면서 생기기도 한다. 감각의 수용과 해석 과정에 대해 상당한 연구가 진척되었고 어느 지점에 조작을 가하면 감각을 조작할 수 있는지도 많이 알려져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상의 세계는 이런 감각 과정에 직접 손을 대 조작해서 만들어진 세계다. 영화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아직까지 과학의 수준은 인간의 신경과 그 전달 과정에 관여해서 완벽한 가상세계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조금 더 쉬운 방법은 외부의 신호를 조작하는 방법이다. 아직까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감을 자극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방법들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인터넷과 같은 온라인 가상세계를 만들고 그곳에 자신의 분신(avarta)을 두어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 자신의 분신을 여럿 만들어 여러 개의 다른 세상에 사는 것도 가능해졌다.

분신은 단순히 주인을 표시하는 것을 넘어 주인의 물리적·생물학적 정보를 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인의 몸을 레이저로 스캔해서 키·어깨넓이·가슴둘레·허리둘레 등 주요 신체 치수를 분신에 저장할 수 있다. 온라인에 있는 가게에서 옷을 샀을 때, 분신이 대신 그 옷을 입어보고 주인이 실제로 입으면 엉덩이가 끼는지, 허벅지는 헐렁한지를 바로 판단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주인의 선호나 취향 같은 것을 분신에 기록해 놓으면 그에 맞추어 분신이 온라인에 구축된 세상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도 있다. 또 다른 내가 또 다른 세상에서 삶을 사는 것이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새 인생을
린든 연구소(Liden Research, Inc.)가 2003년에 개설한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라는 가상세계에 가면 배우가 아니더라도 그곳에 만들어 놓은 분신을 통해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다. ‘세컨드 라이프’는 현실의 복사판이지만 그 현실은 내가 처한 현실이 아니다. 여기서는 이웃들과 이야기하고 쇼핑도 할 수 있다. 연애나 결혼은 물론 사이버섹스도 가능한 공간이다. IBM·선마이크로시스템스·델·도요타·소니 같은 회사들의 지점이 이곳에 있고, 영국개방대학·하버드 대학·델프트 공대·스탠퍼드 대학,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같은 대학 캠퍼스도 있다. 올해 초에 스웨덴은 이곳에 대사관을 열었다. 여기서 통용되는 ‘린든 달러’는 이곳의 거주자들과 린든 연구소, 그리고 실제 기업들이 참여하는 시장에서 미국 달러로 교환이 가능하다.

이곳에 분신을 만들어 놓고 사는 거주자의 숫자는 890만 명이 넘는데 등록만 해놓고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을 중단한 사람들을 제외해도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사이버펑크 작가인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세워진 ‘세컨드 라이프’는 소설 속의 가상세계, ‘메타버스’를 본떠 만들었다. ‘메타버스’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이 살 세상을 정의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이런 가상세계가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데어(There)’ ‘액티브월드(Active World)’ ‘레드라이트센터(Red Light Center)’와 같은 곳들을 찾아 들어가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현실과 갈등하는 가상현실
오감을 만족시키는 세계는 아니지만 ‘세컨드 라이프’에서도 물리적인 법칙들이 점차 많이 적용되어 가면서 실세계를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 이 세계에서 이야기를 하면 10m 이내의 다른 분신들만 들을 수 있고, 소리를 치면 20m 이내의 분신들이 들을 수 있다. 이 세계의 물건들이나 분신들도 물리적 법칙에 따라 부딪치고 반응한다. 점점 더 실제와 비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주자가 늘어나면서 이곳의 생활과 실제 생활을 혼동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늘어나고 있다. 실제의 배우자와 ‘세컨드 라이프’의 배우자 사이의 갈등 같은 문제가 가장 흔하다. 갈등을 넘어 실제 생활을 등한시하는 경우는 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세컨드 라이프’는 실제 세계의 모사(模寫)이고 그 위에서 실제 생활을 할 수 있다. 아마도 다음에는 분신과 주인이 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오감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가상 세상도 실제 세계를 1:1로 대응시켜 놓지 않은 상상의 세계가 되지 않을까?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은 현실의 여유를 반영할 수도 있고 불만족을 반영할 수도 있다. ‘세컨드 라이프’로 슬며시 발을 내딛는 당신은 어떤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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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역사학,환경학을 공부한 주일우씨는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에 관심이 많은 과학평론가이자 문화공간 ‘사이’의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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