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관·학·언론계의 시각/「북길들이기」 강경론 우세/이부영(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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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라크처럼 말로 안된다” 평가/북한도 미만 상대 고집 버려야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긴장 사태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워싱턴을 방문중인 이부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미국의 관계·학계·언론계 인사들과 광범위한 접촉을 갖고 그들의 북핵사태에 대한 평가와 견해를 다음과 같이 본사에 기고했다. 다음은 이 최고위원의 기고문 요지다.<편집자주>
본의원은 제정구의원과 함께 워싱턴을 방문하면서 존 머릴 교수(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국무부의 에이미 하이야트 북한분석관·린 터크 한국담당부 과장·윈스턴 로드 국무부 아태차관보·존스 홉킨스대학의 폴 니츠 교수·폴 월포위츠 전 아태차관보·갈루치 국무부차관보 등을 만났다.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놀랍게도 미국정부는 한반도에 위기나 긴장을 전혀 조성한바 없으며 일부 언론이 부정확한 보도를 자주 함으로써 판단을 흐려 놓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한국정부와는 어구 하나하나까지 상의하면서 협상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도 불구,북한을 바라보는 그들의 견해가 지극히 부분적이고 냉소적이라는 점이다.
경제봉쇄 제재를 가할 경우 2∼3개월안에 북한체제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가진 인사도 있었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좀더 심각한 문제는 재래식 무기 가운데 화학무기며 북한의 인권문제도 이제는 심각히 제기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미국정책 고위당국자가 확인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은 북한을 쿠바·이라크·리비아처럼 말상대가 되지 않는 나라로 치부하고 미국의 의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길들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미국의 자세가 이처럼 완강한 만큼 한반도 공존분위기,남북대화의 호전 등은 당분간 낙관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의 연장에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북한측의 자세다. 북한도 한국은 핵에 관한 아무런 결정권이 없으므로 한국과는 대화를 않고 미국과만 대화를 해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기본자세를 계속 견지하는듯 하다. 미국의 자세가 그처럼 불신과 경멸로 가득차 있고 국제환경이 북한에 거의 등을 돌리고 있는데도,북한이 미국만을 상대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거의 무모하게까지 보인다.
북한 핵문제 처리와 관련해 남쪽에서 보인 여러 징표를 북한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북한에 재앙이 되는 것이 대한민국에게도 불리하고 해로울 수 있다는 인식­. 한국의 정부·여야·국민이 함께 보인 그같은 반응이야말로 한국전쟁이후 처음으로 수면위로 떠오른 남북의 소중한 공동입장이 아니었을까.
북한은 한국에서 정부의 정통성 시비가 사라진 사실,그리고 그 변화에 따라 민족의 공동이해의 실현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북이 남을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고 고집하여 정말 남의 형제를 마저 북을 외면할 때,북은 어쩔 것인가.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그리고 우리 정부의 자세에도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북한의 핵사찰 수용의사 발표는 겨우 고비를 넘긴 것이지 끝난 일이 아니다. 정말 위기가 고조될 경우,미­북 협상이 완전 결렬되어 유엔의 제제가 가해지고 일족즉발의 위기가 밀어닥칠 경우,정말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평양행이라도 해야 할 것인가 아닌가. 비상한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민주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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