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소득세 과표 조정을 제도화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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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올해 세제 개편에서 소득세를 물리는 기준인 과세표준 구간을 조정한다고 한다. 과표구간이란 소득세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소득금액의 단계별 범위를 말한다. 그동안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도 이 과표구간을 11년째 그대로 묶어 두는 바람에 봉급생활자들의 세금 부담이 소득 증가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늘었다.

예컨대 소득세 최고 세율인 35%가 적용되는 연간 8000만원 초과 소득자는 1996년 7000명에서 2005년에는 5만3000명으로 7.6배나 늘었다. 그 다음 높은 세율인 26%가 적용되는 4000만원 초과 8000만원 이하 소득자도 같은 기간 동안 5만 명에서 26만 명으로 늘었다. 소득이 조금만 늘어도 높은 누진 세율이 적용돼 훨씬 많은 세금을 냈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이번 과표구간 조정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문제는 과표구간을 어떻게 조정하느냐다. 재정경제부는 최저세율(8%)이 적용되는 구간만 현행 1000만원에서 1500만원, 또는 2000만원으로 올리되 나머지 과표구간은 그대로 두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면적인 과표조정 없이 최저 과표구간만 올려서는 전체 근로소득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세금 경감 효과는 없이 그저 생색내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미 전체 근로자의 53%가 갑근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는 마당에 하위 소득자들에 대한 최저세율 인상만으로 혜택을 볼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회 예산정책처가 제안한 대로 소득세 과표를 물가에 연동해 조정하는 방안을 조속히 도입할 것을 촉구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떡고물 나눠주듯 과표구간을 임의적, 부분적으로 조정할 것이 아니라 전체 과표구간이 물가 상승에 따라 자동적으로 조정되도록 제도화하라는 얘기다. 더 이상 봉급생활자들의 뻔한 지갑만 털려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