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돈 얻어쓰기/의원님들의 백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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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특별한 일없어도 인사차 방문… 「성의」 바래/특정기업 집중 추궁이나 슬쩍 넘어가기/사전 자료제출요구… 해당업체 로비유도
노동위 돈봉투사건의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비단 노동위 소속뿐 아닌 여타 의원들의 자보비자금 관련 의혹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와함께 일부 의원들의 정치자금 마련이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는 오랜 인식탓에 의원들의 「기업커넥션」 또는 「기업돈 얻어쓰기」의 유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에 본사를 둔 K·L기업 등의 관계자들은 『옛날보다 좀 나아지긴 했으나 일부 의원들 때문에 못살겠다』는 불평을 여전히 털어놓고 있다.
K기업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별 사안도 없이 찾아와 머무르는 의원들이 많고 그들의 방문때마다 인사조로 성의를 표시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그는 『처음에 찾아올 때는 봉투가 두둑하나 방문 횟수가 잦아지면 몇십만원 밖에는 인사를 못한다』고까지 한다.
기업으로서는 반드시 현안과 관련한 일이 아니더라도 궂은 날이나 향후 청탁 등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료 성격으로 의원들에 대한 성의표시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평상시 관계외에 의정활동을 매개로 한 일부 의원들의 기업접근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국회의 대정부 질문이나 국정감사,상임위 활동 과정에서 의원들이 갑자기 특정기업의 비리를 눈에 띄게 추궁하거나 특정기업을 줄기차게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있다.
사전에 보도자료에 올라있던 기업비리 관련 질의내용이 실제 질의에서는 빠질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대개는 냄새나는 「뒷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지난해 국감 첫날 K기업의 비리를 대거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던 H모의원은 다음날부터 단 한마디의 후속질의도 하지 않아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즉 사전에 로비에 의해 비리폭로가 삭제되거나 톤이 약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며 일부 의원들은 이를 역이용,자신을 「기업체 특별관리대상」으로 부각시키려 하기도 한다.
지난해 S기업 총수 장남부부의 외화밀반출 의혹폭로를 사전에 「고지」했던 야당 P모의원은 원내 지도부로부터 「재고」를 요청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또 여권 상대방의 「부탁」에 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노동위 사건에서 각당 지도부 일부가 의심을 받았던 것도 이같은 하향식 해결관례에 비춰볼 때 전혀 근거가 없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의원들이 행정부에 요구하는 사전 자료제출에도 뒷얘기가 무성하다.
특정기업의 사업 관련자료나 은행대출자료를 대거 요구할 경우 관공서나 은행을 통해 해당기업에 자연히 알려지게 마련이고 큰일났다 싶은 기업의 경우 결국 사람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정당내에는 기업민원 해결을 단골로 부탁해오는 당관련인사와 원외위원장들도 있어 「기업민원브로커」의 가능성마저 있는 현실이다.
최근 실명제이후 두드러진 현상은 의원들이 봉투를 받는 대신 식비·주대 영수증을 기업에 맡겨 처리를 요구하는 유형이다.
일부 의원들은 봉투는 봉투대로 받고,영수증은 『당신들도 영수증이 필요할 것 아니냐』며 기업에 맡겨버리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러한 의심을 받기 싫어 의원들이 할 말도 못하는 사례도 있다.
최근 농특세 부과와 관련,일부대상 업종이나 특정기업의 「불이익」이 상당한 논거를 갖고 있음에도 『옳은 얘기지만 쓸데없는 오해를 받을 필요가 뭐 있느냐』며 애써 외면했다.
이런 점으로 미뤄 볼 때 기업의 의견이 국회에 반영되는 공개적인 채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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