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금수해제 이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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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몇몇 남지 않은 냉전시대의 유산중 또 하나가 정리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19년 냉전구도가 무너진지 4년이 넘어서도 계속되어오던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금수조치가 풀리고 두나라는 서로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게 됨으로써 관계정상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는 단순히 두나라 사이의 외교·경제관계의 개선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안정과 아울러 지역경제협력과 번영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또 미국의 금수조치 협조요청 때문에 베트남과 자유로운 교류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던 심리적 압박감에서 벗어나 우리를 포함한 여러나라가 활발하게 경제적 진출과 협력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금수조치는 냉전시대에는 그런대로 명분이 있었다. 비록 베트남이 공산권 붕괴 훨씬 전부터 시장경제 요소의 도입 등 개방에 나서기는 했으나 소련에 군사기지를 제공하는 사회주의 국가였다. 또 캄보디아에 군사개입,인도차이나 반도를 중심으로 동남아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는 위험한 나라로 인식되기도 했다. 아울러 베트남 전쟁때 실종된 2천명이 넘는 미군의 생사여부 확인과 유해송환문제가 해결돼야 관계개선에 나서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다.
냉전이 종식되고,또 베트남의 캄보디아 철군이 이루어져 인도차이나에 평온이 회복되고서도 미국이 금수조치를 해제하지 못한 것은 다분히 국내의 정치적인 요인 때문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해제 필요성이 제기돼 왔으나 베트남 참전단체·상이군인단체·유족 등의 실종자문제 선결요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경제붐을 일으키고 있는 동남아지역의 현황과 미래는 미국의 경제적 득실에 비추어 더이상 그러한 국내문제에 얽매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베트남 자체는 주변 다른국가에 비해 아직 뒤지기는 하지만 착실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을 빼면 사회주의체제를 가졌거나 가진 나라중 발전하는 유일한 나라다. 또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풍부한 인력과 자원을 갖고 있어 성장잠재력도 폭발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울러 역동적인 아세안국가들이 베트남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태세로 있어 이 지역은 경제부문은 물론 정치·군사적으로도 안정될 전망이다. 때문에 베트남에는 일본을 비롯해 프랑스·독일 등 서방국가들의 경제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우리나라 기업도 상당수 진출해 있다.
베트남은 92년 수교때 우리 정부가 「일시적으로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유감」이라고 했을 만큼 특별한 관계에 있다. 또 분단되어 동족끼리 전쟁을 겪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모두 냉전시대에 희생을 치렀다. 그런 뜻에서 우리로서는 베트남의 발전에 다른 나라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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