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심부름꾼 자처 50대 이장 화제-장흥읍 박금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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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자신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 스스로 주민들의「심부름꾼」을 맡아 어린이들에게 한자.예절교육을 가르치고 있는 50대 이장에 대한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전남장흥군장흥읍사안2구 朴金培씨(51)는 지난해 5월 마을이장을 맡고난 뒤 마을 숙원사업의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 뛰면서도지난해 여름방학부터 어린이들에게 천자문.사자소학(四字小學)등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
이 마을 국교2~6년생 어린이들은 매일 오후5시부터 3시간동안 마을회관에서『不孝父母 死後悔,少不勤學 老後悔』(부모께 효도하지 아니하면 돌아가신후에 후회하고,젊어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 후회한다)등 사자소학의 글귀를 낭랑한 목 소리로 암송하며 한자를 익히고 있다.
여덟마지기 농사를 짓고 있는 朴이장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한자와 충효교육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유는「부잡하기 그지없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과 뉘우침때문.
朴이장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뒷골목을 전전하면서 싸움질과술타령으로 30여년의 세월을 허송한뒤「인간다운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번민끝에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살기로 작정,낙향했다.
마을이 떠나갈듯 외치며 익힌 꿈나무들의 한자실력은 이젠 朴이장의 둘째아들 光一군(13)을 비롯,국교 6년생들 대부분이 상용한자 1천자정도를 읽고 쓰는 실력을 갖춰 광주.서울등지 대학교에 유학하고 있는 마을 형들도 동생앞에서 어줍잖 게 한자운운하다가는 그야말로「공자앞에서 문자쓰는」格이 되고 만다.
한자교육 때마다 어린이들에게 자신과 같은 험한 인생길을 걷지않도록 신신당부하는 朴이장의 지극한 정성으로 이 마을은 가끔씩발생했던 어린이들의 도벽도 사라지고 어른을 공경하는 예절바른 분위기가 조성됐다.
한편 朴이장의 노력은 군청에도 알려져 1천7백만원의 군예산 지원으로 현재 숙원사업이던 마을 진입로 포장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朴이장은『한자를 가르친 뒤부터 아이들의 심성이 착해지고 어른들에게 공경할 줄 알게 돼 기쁘다』며『이제는 많은 어린이들이 사자소학을 줄줄 욀 정도여서 짧은 실력을 보충하지 않으면 창피당할까봐 뒤늦게 책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光 州=具斗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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