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부대변인(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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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고 가정적이고 안정된 여성. 외모는 밉지도 곱지도 않으면서 TV 화면에 적합한 여성」. 청와대가 찾고 있는 여성 부대변인의 인물 조건이다. 물론 여기엔 부대변인이라는 직책에 적합한 언론에 대한 이해와 표현력 등도 자격요건중에 들어있다. 어찌보면 별 까다로운 자격요건이랄 수도 없는데 아직껏 적격자를 찾지 못해 고심중이라 한다.
우리나라에 없는 여성 대변인이 미국에는 많다. 베이커 국무장관시절 국무부 대변인을 맡았던 터트 와일러는 널리 알려진 여성 대변인이었다. 「밉지도 곱지도 않은」 얼굴이지만 언제나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이었다. 복잡한 외교현안에 대해 전문가적인 해설과 풀이를 잘 해주었던 여성 대변인으로 많은 기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클린턴정부에도 디 디 마이어스라는 여성 부대변인이 백악관에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대통령선거 때부터 참여했다.
미국 행정부에 여성 대변인이 많은 까닭은 굳이 여성을 우대한 탓이 아니라 직업의 전문성 때문에 생겨난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홍보관계(Public Relation) 업무에 여성들이 많이 진출한 당연한 결과였다. 미국 기업체의 홍보나 대변인 역할도 대부분 여성들이 맡고 있음도 같은 이치다.
청와대가 굳이 법까지 바꿔가면서 여성 부대변인제를 신설하려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TV 뉴스해설에도 남녀 앵커가 있듯이 정부의 여러 딱딱한 직책을 여성 부대변인이 쉽고 부드럽게 알려주고 설명하는게 하등 나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데 있다. 여성중에 그 분야의 적임자가 있다면 자연스레 임명하면 될 일을 있지도 않은 적임자를 찾아 오디션까지 해가면서 야단을 떠는게 오히려 이상스레 보인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여성장관이 생겨났다. 전문성과 경력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발탁되면 그 뒤가 어찌되는건 지난 한해 충분히 검토한 사항이다. 전문성이나 경력보다 밉지도 곱지도 않으며 TV 화면에 얼굴이나 잘 받는 여성을 골라 부대변인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올바른 기능을 할 것인지는 적이 의심스럽다.
청와대의 여성 부대변인 신설이라는 자의적 목적만을 내세울게 아니다. 보사부·문화체육부·교육부 등에 경력과 전문성을 갖춘 여성인력이 많을 것이다. 이중에서 대변인을 선발해 먼저 시도해 봄직도 하다. 어쨌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서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선발하는 자연스런 과정을 거치는게 좋다. 이게 진정한 성차별을 극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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