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수험생 위한 복수지원제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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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대학들은 입만 열면 입시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골자는 교육부가 입시에 관한 거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현행제도를 철폐하고 대학에 선발자율권을 달라는 것이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번 입시는 대학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게 사실이다.본고사 실시나 내신.수능시험의 반영비율에 차등을 둘 수 있게 한 것은 미흡하지만 일정권한을 대학에 넘겨준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선발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학생들의「선택자율권」이다.
대학들은 지금껏 전기. 후기로 나뉘어 같은날,같은시간에 시험을 치러왔고 수험생들은 오로지 한개의 대학만을 선택해야 했다.
따라서 세칭 일류대학에 간발의 차이로 떨어진 학생은 재수하지 않는한 다른 일류 대학에 갈 수 없었다.제도 자체 가 그것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착된 복수지원제도가 시행되지 못했던 근본원인을 따져보면 하향안정지원하려는 우수학생들을 확보하려는 대학들의 담합행위 때문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입시일 선택을 대학측에 맡긴 올해에도 연세대.고려대.서강대등 세칭 명문대들이 서울대와 입시일자를 똑같이 맞춘것만 봐도 그렇다.그러나 망국적이라는 입시풍토를 개혁하고 고질적으로 되풀이되는 배짱.눈치지원이사라지게 하려면 각 대학은 지금과 같은 담합행위를 중지하고 수험생의 복수지원을 가능케 해줘야 한 다.
물론 문제는 있다.복수지원제를 허용해 A대학의 합격생이 다른대학으로 가버릴 경우 대학측은 행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올 입시에서도 포항공대의 경우 수석합격자를 포함,67%가 등록을 포기한 것만봐도 대학측의 혼란을 이해할 수 있다.25일 각 대학의 교무과장들이 모여 복수지원제 재고에 의견을 모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대학들이 선발 자율권 을 요구하려면 마찬가지 논리로 학생들에게도 대학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줘야 한다.
등록 미달사태가 생기면 탈락한 학생들중 성적우수자를 다시 선발하는 제도가 정착돼야만 우수한 실력을 갖고도 재수.삼수하는 모순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외국 대학들은 신입생 선발부서를 따로 두고 1년내내학생선발 업무만 전담하고 있다.그러나 우리 대학들은 지금껏 편안히 앉아 우수학생들만 챙기겠다는 구태의연한 사고를 해온게 사실이다.혼란을 핑계삼아 수험생 모두를 볼모로 하 는 담합행위는이제 중지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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