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전도사 활동 동분서주 김신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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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1일은「1.21사태」가 발생한지 만 26년이 되는 날이다.
68년 1월 21일 북에서 남파된 무장공비 31명은 청와대를기습공격하려다 실패,金新朝씨 한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군.
경에 의해 사살됐다.
현재 金씨는 서울 성락침례교회의 전도사로 활동하며 자신이 설립한 기독인 월남용사선교회 이사장으로 귀순용사들의 전도에 온 힘을 쏟고 있다.내년엔 목사안수를 받을 예정인 金씨를 따르는듯딸(24)은 올해 신학대학을 졸업한다.아들은 현재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중.
오는 29일 서울침례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을 예정인 金씨는『이제 지나온 세월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고 싶다』고 말했다.
생각하고 있는 책제목은『지금 살아있는 그때 죽은 사람』.
金씨는『그때 일행중 누구라도 함께 살았다면 그 사건의 책임을나눌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지난 세월 자신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짐이 너무나 무거웠다고 말했다.
『그 사건으로 일행중 저혼자 살았으니 당시 숨진 희생자들은 모두 제가 죽인 것으로 돼있습니다.하지만 제가 그때 무기를 사용했더라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金씨가 26년만에 처음 밝히는 결백 주장은 이렇다. 당시 군.경과 최초의 교전이 있었을때 바로 일행을 이탈했던 金씨는 무기를 인왕산에 버렸고 자신은 어떤 살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이 점은 무기를 수거해 분석한 결과로도 입증된다는 것이 金씨의 주장.
金씨는 지금의 자신은 세번째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전향해서부터가 두번째 삶이고, 81년 기독교에 귀의한 이후를 세번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귀순용사들에게서 두고온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부모님은 저때문에 돌아가셨고 6명의 형제들은 모두 수용소생활을 하고있습니다.우리 집터까지 아예 없애버렸답니다.』 통일이 되면 고향인 청진을 비롯,북한땅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싶다는게 金씨의 소망.
『저도 누구보다 통일을 기원합니다만 통일은 이론만으로 되는 건 아닙니다.남쪽에선 아직도 북한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金씨는『남북관계에선 무조건적인 양보가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며『북한을 움직이는 사람들,남북대화에 대표로 나오는 사람들이 북한의「인민」을 위한 사람들이 아니라 金日成 한사람만을 위한 인물들이란 사실을 주목해야할것』이라고 말했다. 〈李相列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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