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인 규제완화의 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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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정부의 2기 내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과감하게 경제에 대한 행정규제완화를 단행할 것 같은 예감을 준다. 신임 이회창총리가 규제완화를 민간의 입장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고,정재석 경제부총리가 규제완화는 정부관리들과의 싸움이라고 갈파한데서 그런 기대의 조짐이 엿보인다.
말만이 아닌 실질적인 규제완화가 이루어지려면 지금까지 이것이 왜 제대로 안됐고,앞으로는 어떻게 추진해야 잘될 것인지 우선 생각해야 한다. 새정부는 「행정쇄신위」 「경제행정규제완화위」를 설치,수백건의 완화대상 항목을 선정하고 일부는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그런데도 산업 일선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규제가 원활한 산업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핵심적이고 실질적인 규제완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그 원인은 대체로 관료사회의 영역축소에 대한 우려와 담당업무의 권한에 따른 미련,그리고 법개정 작업의 지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민간영역의 능력에 대한 불신도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 규제완화는 우선 관료들의 인식부터 혁명적으로 전환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행정규제의 철폐나 단순화가 바로 우리의 지상목표인 국가경쟁력 향상에 필수요건이라는 점을 인식하는데서부터 완화작업이 시작돼야 한다. 마치 생산자와 판매자가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듯 규제를 당하는 민간쪽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생각하면 규제완화에 따르는 우려나 미련,불신은 극복될 것이다.
관료사회가 이런 인식에 도달하려면 대통령·총리·부총리는 물론 모든 각료들이 발벗고 나서 관료를 설득해야 한다. 그러는 일방 정부기구를 과감히 축소하고 공무원 숫자를 동결시켜 규제를 풀지 않으면 안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아울러 규제완화를 추진할 전담기구에 민간주도의 폭을 늘리고,그 기능과 권한을 확대시켜 이 문제를 국정의 우선사업으로 삼아야 한다.
이 전담기구는 관료의 입장이 아닌 피규제자의 입장을 살리는데 중점을 둬 규제완화 작업을 하는게 중요하다. 중앙부서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만으론 실질적인 규제완화가 되지 않는다. 규제주체가 누구건 실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정부 일각에서 규제완화 특별법을 개정,일일이 관계법령을 고치지 않고도 많은 규제조항을 사문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볼만한 일이다.
물론 규제완화라고 해서 행정체계에 혼란을 줄만큼 모든 경제활동이 자유방임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의 개입과 교통정리가 필요한 분야는 의연히 존재한다. 따라서 이제는 무슨 규제를 어떻게 완화시켜야 하는지 그 각론이 중요한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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