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꽃마을 무의탁노인 일곱 할머니 방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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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젠 서로 끌어안고 잘일 없겠네.정말 여기 떠나는 거야?』예수의 탄생을 축하라도 하듯 포근한 안개비가 내린 25일 오전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 남쪽담장밑의 2평남짓한 움막.
서초동 꽂마을「최후의 철거민」일곱 할머니들은 시민들이 정성들여 모아준 성금을 받아들고 난데없는 성탄선물에 어쩔줄 몰라하며눈시울만 적셨다.할머니들은 주민등록상으로는 연고가 있으나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거나 찾아갈 형편이 안돼 지 난해 9월 서초동꽃마을이 강제철거당한 뒤에도 유일하게 이 움막에 모여 살아왔다. 행상.취로사업으로 연명해온 이들은 끼니도 걱정이지만 당장 잘 곳이 마땅찮았다.崔모할머니(67)는 차가운 움막바닥에서잠자다 중풍이 걸렸고 裵모할머니(75)는 오른팔이 퉁퉁 부어 아직도 거동이 불편하다.
지난 9월 이들의 딱한 사연을 전해들은 經實聯에서는 곧바로 이들을 위한 모금활동에 나섰다.할머니들에게 달동네 방한칸씩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예상비용은 모두 2천3백만원.찬바람이 불기전에 이 돈을 마련해야 했다.經實聯이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자 서초구청에서는 연중 구청에 접수된 불우이웃돕기성금과 추석때모금된 성금 1천4백만원을 經實聯의「서초동 할머니 통장」에 입금했다. 이에 힘을 얻은 經實聯에서는 9월부터 11월까지 석달동안 변호사.기업대표들이 대부분인 꽃마을지주 28명에게 할머니들의 사연과『20만~30만원씩만 도와주면 할머니들이 서초동을 떠나 따뜻한 방에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도움을 요청했다.야박하게도 이들 가운데 2명만이 1백만원씩을 보내왔다.돈은 아직 7백만원가량이 부족했다.있는 사람들의 야박함을 안타까워하던 經實聯 사무총장 徐京錫목사는 지난19일 이 사연을 예배시간에 신도들에게 알렸다.
「구원의 손」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 왔다.20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신도 한 사람이『예수님이 탄생하신 날부터 할머니들에게따뜻한 겨울이 시작되길 바랍니다』란 전화메모와 함께 經實聯에 모자라는 금액 7백만원을 보내온 것.
『평생 처음 최고의 성탄절을 맞았네요.』 서로 헤어져야 한다는 섭섭함도 잊은채 찬바람이 밴 움막을 떠난다는 희망에 부푼 할머니들은『산타할아버지가 따로 없다』며 서로의 손을 꼬옥 쥐었다. 〈權泰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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