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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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탈출(1) 해가 떨어진 하늘에 찢긴듯 몇가닥 남아 있던 구름도 이제는 어디론가 흩어져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다가오며 검은 휘장을 치듯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종일 섬을 날려버릴 듯이 불어대는 바람만이 어두워지면서 더욱거세져서,방파제를 때리며 부서져가는 파도와 함께 으르렁거리고 있었다.일본인 숙소 쪽의 아낙네들은 허리를 구부리고 종종걸음을쳤고 작업에서 돌아가는 광부들도 다들 몸을 깊 이 숙이고 걸었다. 길남이 주먹으로 바위를 친다.두 번 세 번.그 손이 터지며 피가 흐른다.
으흐흐흐.흐느끼면서 길남이 피묻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아버지,아버지이이이.』 꺼이꺼이 목이 잠기며 불러대는 아버지 소리도 파도 소리에 휩쓸려 버리고,절벽처럼 치솟은 아파트 창문에서는 성냥곽같이 네모진 불빛들이 새어나왔다.방파제 밑후미진 구석에서,버려진 채 시들어가는 풋고추처럼 서서 두 사람은 어둠에 묻혀 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길남이 다시 아버지를 부르며 주먹으로 바위를 내리쳤다.달려들어서 길남의 허리를 껴안으며 명국이 소리쳤다.
『나를 치거라,이놈아.차라리 나를 쳐!』 울부짖듯 목이 멘 명국의 목소리가 파도소리에 쓸려간다.
오늘 따라 갈매기들은 낮부터 떼를 지어 방파제 위를 날았었다.어둠이 점점 짙어가는 허공을 떨어질듯 기우뚱거리며 갈매기들은떼지어 하늘을 날고 있었지만 방파제를 때리고 가는 파도가 갈매기 울음소리를 지워 버리고 만다.
바람이 그들을 날려버릴 듯이 다가와 길남의 머리카락을 마치 뽑아올려진 나무 뿌리처럼 하늘로 치켜올라가게 했다.그를 부여안은 채 명국이 목이 메어하며 울부짖었다.
『이래서 내가 너한테 말을 못했던 거다.』 물먹은 걸레처럼 늘어지며 길남이 바위위에 쭈그리고 앉았다.팔뚝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길남이 어깨를 흔들며 운다.꺼이꺼이 울다가,어깨를 들먹이다가 간간이 길남이 중얼거렸다.
『아저씰 탓하지 않아요.아저씨한테야 무슨 죄가 있나요.그럼요.저라도 그랬을 텐데요.』 명국은 차마 그를 마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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