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시대>36.말著者 사르트르가 국내독자에 끼친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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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사르트르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해방공간인 48년「신천지」등의 문학지에 그의 단편『벽』이 번역되고 실존주의 특집등이 게재되면서부터다.그러나 그가 실존주의문학의 총아로 인식되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를 얻게된 것은 6.25이후부 터.동족상쟁으로 인한 철저한 파괴상황속에서 한국의 문학청년들은 인간은「자신이 행동하는 바에 의해 규정된다」는 실존주의의 어찌보면 영웅주의적이기조차 한 상황윤리에서 구원을 보았다.
「말하는 것이야말로 행동하는 것」이라는 그의 문학관도 당시의젊은이들에게 폭발적 동의를 얻었다.문학평론가인 金允植교수(서울대)는「사르트르와 우리 세대」란 글에서『사르트르는 우리 세대에게 선택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열을 제시 해주었다』고회고하고 있다.
50년대 한국문단에서 사르트르의 영향은 따라서 절대적이었다.
張龍鶴은 실존주의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요한시집』을 발표해 인기작가로 부상했고 젊은 평론가 李御寧은 마치 사르트르의 산문을방불케하는 수사로 가득찬 평론을 발표해 문명을 떨쳤다.그러나 60,70년대 사르트르가 보여준 전투적인 정치적 궤적들은 냉전사고에 젖어왔던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67년『창작과 비평』에 실린 그의『현대』지 창간사등이「정치화된」사르트르의 면모를 소개하는 몇 안되는 문헌이었다.
80년대 사회변혁에 대한 실천적 관심이 커지면서 대학가에서는그의『지식인을 위한 변명』이 필독서로 대접받는다.66년 일본방문때의 강연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전문분야에 몸담고 있는 기능적 지식인들은 보편적 진리를 위해 지배계급에 의 봉사를 거부할때 참된 지식인이 될수 있다는 그의 지식인관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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