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공사의 부실·비리(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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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방의 물결에 밀려 국내 건설시장도 빠르면 95년부터 외국업체에 문을 열어주게 되어 있다. 그러나 국내 건설업계의 체질은 아직도 질보다도 양 위주시대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쟁업체들과 담합해 공사를 따고 무면허업자에게 하도급을 주었다해서 말썽이 된 일산선 지하철공사 부정사건도 근본적으로는 그런데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건설업계의 현실에선 담합행위를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 공사비를 높은 가격에 따내기 위한 것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나 덤핑경쟁으로 인한 공멸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 현실에선 필요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담합행위가 정상적인 것은 결코 아니며 앞으로 건설시장이 개방되어 외국 건설업체와 동등한 자격으로 경쟁할 경우 국내 업체끼리의 그런 담합행위가 용납될리 없다.
따라서 건설업체들은 하루빨리 자유경쟁인 국제적 관행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체 경쟁력을 높여야 하며 감독관청은 담합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효자종합건설이 문제가 되었지만 담합에 참여했던 업체는 1군 건설업체 39개다. 즉 우리나라의 유수한 건설업체가 모두 담합행위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건설업계의 현실로 어떻게 2년후로 다가온 시장개방에 대응해 나갈 수 있을는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효자종합건설은 또 하청을 무면허업체에 준 것으로 밝혀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면허업체가 면허업체 이상의 능력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무면허업체와의 하청계약은 엄연히 엄연히 법규위반이다. 또한 대형건설업체들이 정실에 따라 무면허업체에 하청을 주는 관행을 없애지 않으면 계약질서가 무너지고 부실업체가 공사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따라서 능력에 관계없이 무면허업체와의 하청계약은 어떤 경우라도 허용되어선 안될 것이다.
우리나라 건설업계는 우리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양위주의 것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건설업계에 대한 욕이 되고 있다. 그 오명을 벗기 위해서도 건설업계는 체질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 이제는 양에서 질위주의 체질개선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도 어렵게 된 만큼 부단한 기술개발로 건설단가를 줄여 질좋은 건축물을 싼값에 공급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도 개방시대에 맞춰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일산 지하철공사와 같은 주요공사에마저 비리가 공공연히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은 결국 정부가 잘못된 관행을 묵인하고 감리·감독·검사를 소홀히 한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개방시대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선 행정도 업계와 똑같은 비중으로 체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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