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시인 김남주씨 췌장암 투병-작가회의.민예총 돕기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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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차라리 어둡고 괴로운 시절이라면/가시덤불 속에서 깜박깜박 어둠을 쫓는 시늉이나 하다가/날이 새면 스러지고 마는 개똥벌레라도 될 것을/차라리 추웁고 배고픈 시절이라면/바람 찬 언덕에서 늙은 상수리나무쯤으로 떨다가/나무꾼의 도끼에 찍혀 땔감으로라도 쓰여질 것을』.
시인 金南柱씨(47)가 최근 출간된『실천문학』겨울호에 발표한시「근황」 일부.80년대 저항시인의 상징으로 시대의 어둠을 쫓으며 바람찬 시대,얼어붙은 양심들을 덥히던 金씨가 이제 나태해진 자신을 뒤돌아보고 있는 시다.
그런 金씨가 최근 췌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다.올초부터 위염.십이지장궤양으로 시달리던 金씨가 췌장암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달 15일.수술이나 양방으론 치료가 어렵다는 것을 안 金씨는 光州로 내려가 한방치료를 받다 지난달 25일 다시 서울로 올라와 집에서 병과 싸우고 있다.
79년10월 남조선민족해방전선사건으로 구속된 金씨는 15년형을 선고받고 88년12월 가석방으로 풀려나기까지 9년2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74년『창작과 비평』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金씨는 0.7평 독방에서 휴지조각.담배갑등에 시를 써나갔다.그렇게 쓴 시들이 감옥 밖으로 나와『진혼가』『나의 칼 나의피』『조국은 하나다』등의 시집으로 출간돼 나왔다.
출옥후『세상이 아무리 개차반이라도 詩가 세상을 바꾸기 위한 단순한 구호로 전락할 수는 없다』며 정서에 바탕한 민중시의 새방향을 모색하는 한편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로서 민족.민중문학 활동을 이끌어오던 金씨가 이제 암에 걸려 힘 겨운 투병을 하고 있다.
그런 金씨를 위해 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申庚林)와 민족예술인총연합(이사장 廉武雄)은 투병을 위한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국민은행 019-21-0596-167 예금주 이승철, (313)1486).두 단체는 또 이달 23일께「김남주문학 의 밤」행사도 가질 예정이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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