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개방후 외국산 밀.콩.옥수수 국내시장 싹쓸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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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농산물 시장개방으로 값싼 수입품이 밀려들어오면 우리 농작물의설 곳은 어디쯤 될까.
국내수급조절을 위해,또는 농산물 가격안정대책에 따라 이미 수입되고 있는 밀.콩.옥수수등 「개방작물」들은 단시간내에 국산작물을 압도하는 괴력을 과시해왔다.
수입품의 가격과 국내 생산가격의 차이가 워낙 크다보니 우리 작물이 발 붙일 곳이 좁아들 수밖에 없었다.
정부도 물가안정을 위해 국산작물의 자급률이 곤두박질치는 것을그대로 방치했다.굴러들어온 돌이 박혀 있던 돌을 밀어내는 형국이 연출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밀이다.
60년대까지 美國의 원조용 잉여농산물에도 불구하고 밀의 자급률은 30~40%에 달했으나 70년대부터 들어온 값싼 수입밀에밀려 생산량이 계속 줄어들다 84년에는 정부의 수매마저 중단됐다. 최근 밀의 자급률은 거의 0%에 가까운데다 심으려야 심을만한 종자를 구하기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뒤늦게나마 91년부터 민간차원에서 「우리밀 살리기운동본부」가결성돼 밀을 재배,회원들과 고려당등 일부 식품가공업체에 극히 적은 양을 판매하고 있을 뿐이다.
정도는 덜하지만 콩도 마찬가지 신세다.과거 자급률 1백%를 자랑했던 콩은 60년대부터 수입콩에 밀려 자급률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해 올해에는 불과 20%에 그쳤다.연간 콩소비량 1백20만t가운데 25만t만이 국산인 셈이다.
현재 수입콩을 사들이고 있는 식용유 생산업체들은 수입물량에 따라 일정량의 국산콩을 사도록 돼있으나 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대부분 외면하고 있다.
농산물 시장이 완전히 열려 이같은 의무규정마저 없어질 경우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논두렁의 콩마저 자취를 감추게 될것으로 우려된다.
江原道의 특산물인 옥수수도 값싼 수입품에 위협받고 있다.자급률도 크게 떨어져 60년대 중반 55%에서 최근에는 1%수준으로 곤두박질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이에 따라 수입량도 80년대이후 매년 8~9%가 늘어 지난해에는 8억4천7 백만달러에 달했다. 또 91년부터 옥수수기름 수입이 자유화된 이후에는 식품업체들이 채산을 맞추기 위해 국산 옥수수 구매를 더욱 기피하고 있다.
이밖에 60년대 수출용 원자재로 수입되기 시작한 면화는 당시나일론에 밀려 가뜩이나 고전하고 있던 국산 면화를 초토화시켰고,91년에는 수입바나나가 濟州道의 바나나 농가를 거의 폐농으로몰고가기도 했다.
수입품에 자리를 내준 우리 작물의 현주소는 경쟁력 강화라는 근본대책을 세우지 않을 경우 쌀도 언젠가는 수입품에 밀려 천덕꾸러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관세화를 유예받는 기간에 쌀의 품질을 개량하고 생산성을 높여 일정수준의 생산량을 유지하는 것이 당장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金明煥연구위원은 『식량안보 차원에서 곡물의 품목별 목표자급률을 정한뒤 이를 지켜나가는 생산정책이 마련돼야한다』고 말했다.
〈南潤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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