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개방 반대” 한­일 합동시위/제네바 줄다기리… 숨가쁜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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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끝날 때까지 오지마라” 대표단에 훈령/야 의원 “한­미 비밀협상” 폭로 해프닝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시한을 불과 1주일 앞두고 제네바의 한국협상팀은 8일(한국시간) 하루만도 모두 14개의 양자 및 다자협상에 참가하는 등 우리나라 이익이 반영되도록 안간힘을 쏟았다.
그런가 하면 제네바에 급파된 한국농민들과 농촌 출신 야당 의원들은 일본 농민·의원들과 연계해 장외에서 쌀시장 개방반대 시위를 벌였다.
○…협상대표단 가운데 강봉균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박운서 상공자원부 1차관보는 8일 오후(한국시간)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서울에서 『UR가 끝날 때까지 제네바에서 머물며 최선을 다하라』는 훈령을 따라 귀국을 취소.
○…쌀개방 저지를 위해 제네바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영진의원(민주) 등 야당 의원 4명은 8일 저녁 한때 「폭탄선언」을 터뜨리는 바람에 취재기자들을 아연 긴장시키는 사태를 연출.
김 의원 일행은 이날 트란반 틴 제네바 주재 EC 대사를 면담하는 자리에서 『한국정부의 대표가 지난 11월 미국과 비밀협상을 벌여 쌀개방에 대한 합의와 서명까지 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국 기자들에게 밝히고 『따라서 정부의 이같은 기만행위를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흥분한 것.
김 의원에 따르면 『그런 사실도 모르고 여기에 왔느냐. 한국의 쌀 외교는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라는 틴 대사의 말을 전하면서 정부와 협상대표단들을 싸잡아 공격.
이같은 흥분에 기자들이 통역을 맡았던 조순승의원에게 재차 확인하자 『그 자리에 한국의원들과 일본의원들이 함께 있어 틴 대사가 11월에 합의,서명했다고 한 말이 한국을 지칭한 것인지 일본을 지칭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설명.
더구나 틴 대사가 한국외교가 조잡하다고 판단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이 쌀개방 저지에 너무 매달려 있기 때문에 다른 많은 것을 잃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폭탄선언」의 김이 빠져 버린 셈.
이에 대해 허승 제네바 대표부 대사는 기자들로부터 사실 확인여부를 질문받고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없고 절대 없다고 확언한다. UR협상의 관행상으로도 그런 서명행위는 있을 수 없다. 더구나 틴 대사는 그런 일을 코멘트할 입장도 못된다』고 잘라 부인.
한편 허 대사가 이날 밤 늦게 틴 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하자 틴 대사는 『절대 그런 말을 한 일이 없다. 다만 미국과 한국 사이에 「언더스탠딩」이 있었다고 말했을 뿐이다. 내일 아침 당장 성명을 내겠다』고 발뺌.
한편 이날 김 의원 일행의 면담내용 일부를 모기자가 녹음,그에 대한 확인작업이 밤늦게까지 벌어졌는데 동의·서명부분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다만 이날 면담에서 틴 대사가 『서울과 동경의 EC 대사관으로부터 양국 정부가 미국과 사전 합의를 했다』고 말한 사실은 확인됐다.
○…청와대는 9일 오전 『정부가 이미 11월부터 미국과 비밀협상을 벌여 개방조건에 합의했다』는 조순승의원 등 민주당 의원 4인의 주장에 대해 『녹음까지 들어보았는데 그들의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
박재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김영삼대통령의 담화직전 기자실에 들러 『야당 의원들은 틴 제네바 주재 EC 대사가 자신들에게 그런 말을 했으며 녹음이 되어 있다고 하는데 녹음 확인결과 그런 내용이 없다』고 부인.
박 수석은 『이를 확인하려는 허승 주제네바 대사에게 틴 대사는 「그런 말 한적이 없다」고 했다』고 소개.
박 수석은 『협상은 지금도 진행중에 있고 가장 어려운 고비에 와있다』고 설명.
○…한국 농민 18명과 일본 농민 19명,한일 국회의원 8명은 8일 오후 제네바 유엔사무소앞 광장에서 「쌀수입 반대」 「관세화 반대」 「누구를 위한 UR냐」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1시간30여분동안 연합시위. 이들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태극기·일장기를 앞세우고 징·꽹꽈리를 치면서 시위를 벌였는데 30여명의 보도진이 취재경쟁.<제네바=이장규·박의준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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