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개방에 대한 사과와 약속(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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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드디어 김영삼대통령이 쌀개방이 불가피하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자리를 걸고 쌀수입을 저지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사과도 했다. 그대신 쌀개방에 따른 농민보호 및 농업구조개혁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또다른 약속을 했다.
세계정세의 흐름으로 볼때 국제사회에서의 고립보다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속의 경쟁과 협력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은 충분히 이해된다. 다만 대세가 그렇더라도 이번 우루과이라운드(UR)의 진행과정에서 보여준 국가경영방식에 대해선 아쉬운 점이 많다. 우리나라가 UR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고,UR에 참여한다면 쌀문제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텐데 과연 이에 대한 거국적·조직적 준비를 했느냐 하는 점이다.
국민들이 더 분노하고 화내는 것은 정부가 불과 얼마전까지 쌀개방 절대불가를 되뇌다 이제 갑자기 불가피론을 들고 나오느냐는 것이다. 국제정세 돌아가는 것을 너무 몰랐거나,협상이 서툴렀거나,알고도 쉬쉬했거나 셋중의 하나인데 어느 것이든 정부의 잘못과 책임이 크다.
쌀문제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역대정권을 그랬던 것처럼 문민정부도 정면돌파를 계속 피해온게 아니냐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겉으론 국제화를 외치면서도 국제화가 내정의 부담으로 직결돤다는 것을 인식 못했거나 감당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국제화는 새로운 구조조정이기 때문에 반드시 국내에서의 득실이 다르고 이해상충이 생긴다. 그것을 국가의 긴 장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재단하고 유도해 가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이번 쌀문제에 있어서도 좀더 견식·용기·솔직함을 가지고 유연하게 조직적으로 대처했더라면 현 상황보다는 훨씬 충격과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쌀개방을 안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마지막까지 끌고간 정부의 자세는 아무리 대외용이라해도 옳지 못하다. 그 때문에 국론분열이 더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를 정쟁의 호기로 이용하거나 정권타도의 구실로 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앞으로 쌀논의는 개방의 충격을 어떻게 최소화하고 농업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데 집중되어야 한다. 또 각자 각 기관이 역할을 맡아 응분의 부담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 규탄·비난보다는 한자락씩 거드는 일이 중요하다.
우선 정부가 안으로 만들어놓은 비전과 대책­만약 있다면­을 내놓고 논의해야 한다. 김영삼대통령은 종합개방대책을 세워 철저히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려면 우선 현실적 전략을 세워 일을 조직적으로,또 소신있게 밀고 나가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다. 쌀개방 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무책·시행착오·각개약진이 사후 대책에 있어선 결코 되풀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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