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는 불구속이 원칙이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우리 국민들의 다수는 범죄혐의가 있는 사람중 구속되는 것이 원칙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불구속 수사나 기소가 되면 그것은 「유전무죄」 「유선무죄」의 결과라고 인식해버리곤 한다.
이제까지의 수사관행이나 재판관행에 비추어 볼때는 그것이 크게 빗나간 인식은 아니다.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은 물론 사법부까지도 피의자는 일단 구속되는게 원칙이라는 그릇된 인식에 젖어왔다. 구속여부의 결정권한은 사법부에 있는데도 경찰이나 검찰이 걸핏하면 「모두 구속수사하겠다」는 엄단방침을 태연히 남발해온 것도 그런 잘못된 관행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도 범법혐의자는 구속되는게 원칙이고 불구속은 예외적인 봐주기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현행법의 정신이나 법규정과는 정반대의 잘못된 인식이며 수사기관들의 수사편의주의적 관행과 사법부의 무책임,둔감한 인권의식이 빚어낸 그릇된 사회통념이다.
헌법은 엄연히 「형사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형사소송법은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가 없을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에만 구속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즉 피의자는 불구속이 원칙이고 구속은 예외임이 분명한 것이다.
따라서 대법원이 앞으로는 수사기관에서 청구되는 구속영장을 과감히 기각,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는 폭을 대폭 확대할 방침을 밝힌 것은 현행법의 규정과 정신에 비추어 볼 때 너무도 당연하다. 대법원으로서는 전국 법원의 영장기각률이 91년 6.5%,92년 5.8% 등 해마다 10% 미만이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먼저 느껴야 한다. 영장발부율이 연평균 90%를 넘었다는 것은 법원이 수사기관의 편의주의나 반인권적 법운용을 거의 그대로 추인해 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수사기관 등 일부에서는 갑작스런 관행의 변화에 따르는 혼란을 우려해 불구속 재판의 급속한 확대에는 반대하는 의견도 있으나 그것은 용인하기 어렵다. 마치 그것은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부터가 법규정과 법정신을 당분간 더 어기겠다는 것과 같다. 이제까지의 관행이 잘못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바로잡고 불구속 수사로도 국가의 형벌권이 엄격히 집행되는 제도와 체제를 갖추는 것이 바른 길이다.
새 검찰총장은 사실상의 강제연행이었던 임의동행제의 억제,철야수사의 금지 등 여러가지 인권보호적인 조치를 취한바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대법원의 방향전환에 검찰도 적극 호응해야 마땅하다. 사법부도 불구속 재판의 확대에 과감한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데 소극적이라면 요즘 국민의 박수를 받고 있는 전체 사법부 개혁에 대한 인상마저 흐려질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