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20. 토요일의 횡재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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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방사선 검출기의 일부를 나트륨 합금 계열 대신 비지오로 대체한 PET.

나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고 집이나 대학 근처에 있는날이면 연구실에 가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런 습관은 지금까지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전날 한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또는 연구실에 누전으로인한 화재 위험은 없는가. 이런저런 궁금증과 불안감으로 항상 연구실을 찾는 것이다.

 1976년 어느 날이었다. 토요일이라다른 연구원들은 출근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날도 예외 없이 텅 빈 연구실에 들렀다. 그날 따라 유난히 연구실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얼기설기 놓여 있는실험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몇 개월 전 박사후 과정을 밟던 만빌 싱 박사가 비지오 (BGO) 실험에 썼던 것이었다. 실험대를 분해하지 않고 그대로 뒀던듯했다. 그땐 싱 박사가 메이요 클리닉으로 떠난 뒤였다.

 ‘아,그때 비지오실험하던 것이네. 어디 한번 내가 직접 성능 평가 실험을 해볼까’. 실험기기를보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나는 싱 박사로부터 실험 결과만 받은 데다 그의 말을 액면그대로 믿었던 기억이 떠올라 직접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이미 말한 것처럼 싱 박사의 전공은 이론 물리이지 실험 물리가아니었다. 때문에 그의 실험 능력이나 감각은 실험을 위주로 하는 실험 물리를 전공한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연구실 구석에서 조그만 비지오 덩어리를 찾아내 실험대에 걸었다. 전원을 켜자 실험 장비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싱 박사가만들어 놓은 실험 장치에 감마선을 쐈다. 그러자 측정 장치에 데이타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비지오에 대해 가장 궁금하던 시간 분해능을 재어보니 3.74나노초(1나노초는 10억분의 1초)가 나왔다. 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싱 박사한테서 받았던 성능 평가 결과보다 더 좋은 결과였다. 이보다더 중요한 것은 비지오의 검출기 효율이었다. 기존 NaI보다네 배나 효율이 좋았다. 이는 PET에선 제곱승(乘)으로 나타나므로 무려 16배좋아진 것이다. 시간 분해능이 싱 박사의 실험 결과인 50나노초와너무 큰 차이를 보였다. 또 3.74나노초라는 시간은 당시 PET로서는 아주 좋은 시간 분해능이었다. 핵물리에서 사용하는 시간분해능이란 시간을 얼마만큼 쪼개 현상을 볼 수 있느냐를 말한다. PET에서는 절대적이기도 하다.

 실험을 하면서 “그럴리가 없는데, 실험 장비가 잘못 조립됐나?” 실험시설을 하나하나 재점검했다.그러나 별다른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다시비지오의 성능을 쟀다.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밤이 깊어 실험을 계속하기 어려워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흥분을 삭일 수가 없는 데다 정말 그 결과가 맞는지 너무 궁금해 밤잠을 설쳤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막힌 새로운 발견이기때문이다. 특히 작은 핵 검출기를 쓸 수 있다면 우리의 원형 PET 가정말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새벽 뛰다시피 해 다시 연구실로 갔다. 혼자 다시 실험 시설을 점검하고, 수십 번 반복해 성능을 쟀다. 결과는 처음 측정했던 것과 거의 같았다. 과학에서 많은 발견과 발명이우연히 이뤄진다고 하더니 바로 이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단 이틀 만에 의과학사에 큰 족적을남긴 비지오라는 물질의 성능을 새롭게 알아낸 것이다.

조장희 <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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