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으로는 말못해” 현상/김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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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잘 알려진대로 NIMBY(Not In My Backyard)는 편협한 자기이익방어주의를 꼬집는 말이다. 자기는 쓰레기를 버리면서도 그 쓰레기 소각장같은 흉물이 자기 동네에 세워져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NIMBY는 공동체의식을 파먹고 들어간다.
요즘 우리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NIMMO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판이다. 「Not In My Mouth」(한국식 영어·내 입으로는 말 못해) 현상이다. 사람들은 꼭 필요한 예기인줄 알면서도 인기가 없거나 조금이라도 욕먹을 일이면 자기 입을 굳게 닫아버린다. 그리곤 다른 사람의 입이 열리길 기다린다.
NIMMO의 대표적 사례를 들라는 질문이 던져지면 당연히 정당은 「쌀시장 개방」이 될 것이다.
대통령·총리에서부터 아래로는 장관·국장에 이르기까지 머리와 손·발은 어쩔 수 없이 개방안 준비쪽으로 가면서도 입술은 정반대로 열린다. 『개방불가방침 불변』이라는 여덟글자다.
대선때 『대통령직을 걸고…』라고 했던 김영삼대통령은 이 최대 국정현안에 대해 별 언급이 없다. 평소 『시어머니처럼 내정을 챙기겠다』고 결심해온 황인성 국무총리는 유독 쌀에 대해서만큼은 조용하다. 총리실 관계자들은 『그 문제는 경제기획원·외무부·농림수산부 등 우루과이라운드 대책부에서 알아서할 것』이라고 회피한다. 허신행 농림수산부장관은 TV에 나와 개방검토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물론 침묵·부인을 위한 정부의 변명도 있다. 『최악의 경우까지 가더라도 일단은 안된다고 부인해야지 어떡하겠느냐』는 얘기다. 허 장관은 TV에서 『개방검토라는 언론보도는 우리의 협상력만 약화시킨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정부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 못하는바 아니다. 정부가 이를 다루는 전략의 부재를 노출했기에 문제라는 지적이다. 쌀시장 개방압력이 예상된 것은 수년전부터다.
그에 대비한 농정의 쇄신과 투자가 적절하게,그리고 내실있게 준비되고 추진됐어야 했다. 그러고도 협상략 강화를 위해 침묵한다면 누군들 정부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기자는 신문사에 걸려오는 독자의 전화를 빠뜨릴 수 없을 것 같다. 독자들은 『신문도 좀더 일찍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의 쌀파동이 『내입으로는 말 못해』 현상을 줄여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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