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이즈의 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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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코끼리는 그의 배우자를 결코 바꾸지 않는다. 수놈은 암놈을 매우 아낀다. 둘은 3년 간격으로 교미하는데,그것도 오직 5일동안이며 매우 은밀하게 행하기 때문에 그 장면을 결코 볼 수 없다. 그러나 제6일에 수놈은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데,이때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곧장 강으로 뛰어들어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들이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에 너무 탐닉하지 않도록 배우지 않을 것인가.」
성프란시스가 1609년에 쓴 『독실한 생활에로의 입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인 고대사회부터 일부일처제는 사랑과 번식의 올바른 모형으로 칭찬받았으며 심지어 순결과 금욕이 칭찬의 대상으로까지 되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와 함께 성의 방종과 타락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치달았다. 성교를 일종의 「격렬한 기술」이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그 기술의 발전이 거의 무한대라는 우려가 제기된 적도 있다.
그래서 「20세기의 천형」이라 불리는 에이즈의 등장을 기독교에서는 인류에 대한 당연한 형벌로 본다. 질서와 통제가 무시된 성에 대한 인류의 끝없는 쾌락과 욕구가 하늘의 마지막 경고를 스스로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에이즈가 인간의 힘,과학의 힘으로 과연 극복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신의 섭리이므로 그 형벌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성의 기술이 무한대라면 과학의 힘도 무한대이므로 조만간 극복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꼭 종교적인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설혹 과학의 힘으로 극복된다해도 성의 방종과 타락이 그대로 방치돼서는 안된다는게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에이즈를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의 개발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성도덕을 확립함으로써 하늘의 분노를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에이즈 감염자는 2백여명으로 미국 등 에이즈 선진국들에 비해 아직 그 숫자는 미미하지만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연구수준도 문제일뿐만 아니라 성의 타락현상도 나날이 심화돼 공포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제6회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으며 다시금 성의 문란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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