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야 더욱 설득력 있다/김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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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즘 「대통령선거공약」의 실천성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쌀시장 개방이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불거져 나오자 야당과 재야는 본능적으로 김영삼대통령의 대선공약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자리를 걸고 쌀시장은 지키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최근 「14대 대선공약 실천계획」을 마련했다. 김 대통령과 황인성 국무총리가 도장을 찍지는 않았지만 각 부처의 의견을 모아 실무적으로는 완성된 안이다.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은 계획을 짜면서 김 대통령의 대선공약 1천2백26건중 동서고속전철 등 1백29개 사업은 재정형편상 또는 투자우선순위의 타당성 측면에서 김 대통령 재임중 실천에는 무리가 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 사실이 중앙일보 26일자 1면(일부지방 27일자)에 보도되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국회에선 야당이 『대국민 약속위반』이라고 정부를 몰아붙였다. 국무총리실에는 지방으로부터 『왜 우리 고향사업을 뺐느냐』는 항의전화가 적잖이 걸려왔다.
황 총리는 국회답변에서 완전히 사업추진에서 제외한 것이 아니라 장기 검토사업으로 분류해놓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동서고속철도 같은 경우도 정부에 돈이 없어 민간자본으로 만드는 방안을 연구중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실과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실천계획 작성에 참여한 실무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민간자본조달은 사실상 불가능한 걸로 검토가 끝났다는 것이다. 일부 관계자는 『정부가 자꾸 국민에게 면피성 발언만해서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할 정도다.
공약을 다 지킬 수 있다면 오죽 좋겠는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질 않다.
이는 김 대통령조차 시인한 적이 있다. 그는 선거때 관훈토론회에서 『왜 자리를 걸고 쌀시장을 지키겠다고 했느냐』는 질문에 「강조어법인데 뭘 그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느냐」는 식으로 되받았다.
지키지 못할 일을 움켜쥐고 국민에게 자꾸 「검토중」이라고 거짓말하는 것보다는 떳떳하게 실천 못하는 이유를 밝혀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자세가 훨씬 당당하고 정도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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