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없는 정치는 말아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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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가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예산국회를 충돌직전으로 몰고 있다. 야당은 쌀개방 반대를 내세워 국회 농성과 궐기대회 등 장외투쟁까지 준비하고 있고 여당은 코앞에 닥친 법정시한(12월2일)내 예산안 강행통과를 공언하고 있다. 예산안·안기부법·추곡가 등 가뜩이나 현안이 쌓여있는데 쌀문제까지 겹쳐 정국이 심상치 않다.
우리는 국내외로 할 일이 산더미 같고 모두가 단합해도 제대로 될까말까한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는 터에 정치권이 소모적인 무익한 정쟁에 빠져있는데 대해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여야 정치행태를 보면 서로 자기주장을 받아주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막가는 정치다. 야당측은 쌀개방은 「결사」 저지,또는 「절대」 불가이고,여당측은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다는 식이다. 독재시절 우리 정치의 고질이었던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정치가 문민시대에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퇴로없는 정치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쌀개방건만 하더라도 우리 시장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협상에 온 역량을 집중해야 할 판이다. 야당의 극한투쟁은 이 협상을 측면지원하는 긍정적 일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가 여의치 못할 때의 대안도 있어야 한다. 책임있는 공당이 「절대불가」만 외치다가 안되면 자폭이라도 하겠다는 무책임한 자세를 취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야당이 극한투쟁과 함께 쌀개방 저지를 위한 전략개발과 불행히도 개방을 않을 수 없는 경우의 대안에도 지혜를 모으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우리가 보기에 여당은 너무 꽉 막혀있는 것 같다. 야당이 추곡가를 올리고 안기부를 약화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있고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그런 야당의 주장은 협상과 타협으로 받을 것은 받고 줄 것은 주는 방식으로 해결해야지 예산안의 법정시한이 코앞에 오도록 협상다운 협상도 한번 해보지 않고 고작 「강행」 소리만 하고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당 3역이고,중진이고 제 몫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다. 3역회담을 해봐야 전혀 진전이 없고 그나마 기대를 모았던 영수회담도 대통령 국회연설의 야당 불참소동으로 분위기가 냉각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이 결코 파국을 원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빨리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 협상을 하되 이번에는 여야가 전권을 가진 협상팀을 만들어 협상해야 할 것이다. 종전 주장만 되풀이할 재량권없는 협상대표로는 협상이 될리가 없다.
그리고 예산안은 당장 오늘부터 밤을 새워가며 밀도있는 심의로 격돌없는 처리에 힘써야 한다. 그런 진지한 노력을 해도 법정시한을 지킬 수 없을 경우 여당은 날치기처리를 않는게 좋겠다. 시한준수 못지않게 격돌과 날치기를 피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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