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의 북핵 정책 조율(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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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의 핵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해결이 시급한 사안인지 23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시 확인됐다. 기회있을 때마다 시장개방을 요구하며 경제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는 미국정부와의 이번 정상회담에서 경제문제보다 북한에 대한 정책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는 사실이 두나라 정부의 그러한 인식을 보여준다.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김영삼대통령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남북한 대화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수용을 전제로 한 북한과의 대화원칙을 거듭 밝힌데 대해 일단 안도한다. 북한측이 이른바 일괄타결 방안을 거론하고 난뒤 그 대응책을 두고 한미간에 혼선을 빚는듯한 인상을 줘오던 최종적이면서도 확고한 정책조율이 이뤄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결과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으로 보아서는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제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이 약속대로 남북한 대화를 재개하고 IAEA의 사찰을 수용하면 한미 양국의 입장을 「재고할 것」이라는 내용이 주목된다.
그동안 미국정부와 클린턴 대통령의 발언으로 보아서는 새로운 접근방법이 모색되고 있음은 충분히 감지되어왔다. 북한이 일괄타결 방안을 제의하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데 이어 클린턴 대통령은 APEC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방안을 마련중이며,북한 핵문제를 위한 몇가지 이니셔티브를 내놓고 김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중 한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포괄적인 접근이라는 표현을 「철저하고도 광범위한 접근」이라는 말로 조정하기로 한 것은 적절한 조치로 보인다. 그동안 미국정부가 이야기하던 포괄적인 접근이라는 말이 북한이 주장하던 일괄타결 방안과 혼동돼 빚어졌던 참에 오해를 씻어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새로운 접근방안이 필요한 시점에서 북한에 대한 부동의 원칙틀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방안으로서 유용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철저하고 광범위한 접근방법에서는 북한이 이 조건을 받아들일 경우 입장을 재고하겠다는 한미 정상간의 합의내용에서 보듯이 팀스피리트 중지 등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는 정치적 선언이나 약속이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정책수립 과정에서 최근 며칠동안 빚어졌던 것과 같이 마치 한미간에 이견이 있는듯한 인상을 주는 일이 없도록 치밀한 논의와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뜻에서 우리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정책조율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간 공조체제가 확인된 사실도 평가할만하다. 미국과 직접접촉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북한측이 유념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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