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광장>마음의여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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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晩秋의 陽光을 즐기며 바깥 일을 본다.
그때 실내에서 울리는 전화벨소리.후다닥 손털고 일어나 모퉁이를돌아갈 때 두번째,현관문 열고 불난 집 불끄러들듯 뛰어들 때 세번째,거실을 가로질러 책상위의 전화기를 잡는 순간 네번째 따르릉… 『여보세요?…』 『뚜…』 이미 끊겼다.웬 성미들이 이리도 급하담.
뜰이 좀 있는 집에 이사와서 매번 이렇다.누가 들으면 마당이수백평되는 것 같으나 코딱지만한 땅이다.아파트처럼 실내가 전부는 아니라는 정도.그 작은 뜰에서 실내로 들어오는 순간을 허용해주지 못하는 우리의 성급한 문화.딴 나라 영화 를 보면 전화를 받기 위해 허둥대는 모습은 일반적으로 없다.샤워하다가 흔히받는 모습도 털고,닦고,걸치고 느긋하게 여유있게…그래도 벨은 끈질기게 울려준다.일상의 품위를 깨지않고 우아하게 전화를 받을수 있다.이 경우 우리라면 십중팔 구「뭐하느라고 전화를 늦게 받느냐」로 시작해서「안받아서 끊으려고 하던 참이다」식의 사설이한참이다.용건은 간데없고 이쪽에서도 그 상황설명이 시작되고…피곤하고 쾌감이 없는 화법이여.진짜로 바빠본 사람은 그렇지 않을것이다.사람은 항상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전화벨쯤은 최소한 열번이상 당연히 기다려줘야 한다.그 누가 전화기를코앞에 놓고 앉아 그것만 덜컥 받는단 말인가.
나에게 화가 친구가 하나 있다.그는 매번 나로부터 감동을 받는 모양이다.
『넌 한국사람 아닌것 같아.작업중에 붓좀 처리하고 받으면 죄다 끊기는 거야,이놈의 전화가.그거 봐주는 사람 너밖에 없다는거 아니냐.』 그 친구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30초도 안되는 열번쯤의 신호를 기다리지 못한단 말인가.
『다정한 사람들이여.느긋한 기다림을 즐기면서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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