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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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어머니,어머니(25) 주위는 이미 어둑어둑 해져 있었다.숙소 쪽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흐릿하게 담장 위로 바라보였다.
지상의 옆에 서서 나란히 요시코는 갈림길까지 왔다.지상이 돌아서며 키 작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어쩌지요.어두워져 버렸으니.』 『아,그렇군요.』 요시코가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다.
『윤상… 저녁식사가 벌써 끝나지 않았을까요.』 『그건 괜찮습니다.식당에서 절 이뻐해서 늦게 가도 밥은 줍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요시코가 말끄러미 지상을 쳐다보았다.
때때로 관리직 사무소에서 야마구치와 징용공들의 작업량을 계산하거나 공원들의 재배치 문제로 회의를 할 때면 저녁 식사 시간에 늦을 때가 이따금 있었다.그런 날이면 지상은 따로 저녁을 먹곤 했었다.
『사무실에서 오는 길이라고 하면 됩니다.』 『아하 그렇네요.
』 무슨 소린지 아는 요시코가 고개를 숙이면서 소리를 죽여 쿡쿡 웃었다.웃음을 그치며 요시코가 고개를 들었을 때 지상은 문득 생각했다.이 여자는 누가 크게 소리만 질러도 울어버릴 것 같은 그런 여자가 아니었던가.
『그런데,어두워져서 혼자 가실 수 있겠어요?』 『천둥이 칠 것 같지는 않으니까 괜찮아요.』 『지진이 날 것 같지도 않고요.』 『그럼요.물론 어디서 화재가 날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둘은 소리를 낮춰 웃었다.지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러나,아버지가 화를 내실 건 분명한데요.』 요시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저도 관리 사무실에서 온다고 할 거니까 걱정할 거 없어요.』 바람이 길가의 마른 풀을 스치며 지나갔다.이런 가을바람이 불면 조선에서는,비가 올 것 같다고 생각하지.그런 생각을 하는 지상에게 요시코가 손을 내밀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밤이 감싸고 있는 손에는 어둠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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