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임시 이전 문제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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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제 총독부건물을 헐어내기 위해 중앙박물관을 임시로 이전하려는 정부 방침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와 대학교수·문화계 인사 등 5천여명의 모임인 「우리의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최근 박물관의 임시이전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연기명으로 작성해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들은 이 서한에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중인 옛 총독부건물을 먼저 헐어낸다면 여기에 보관·전시중인 귀중한 문화유산을 임시고 옮기고 보관해야 하는,극히 위험하고 낭비적인 절차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문화체육부는 오는 96년까지 유물의 임시이전을 끝내고 총독부건물을 헐어버린 다음 적당한 부지를 골라 박물관을 다시 지어 2차로 유물을 영구 보관·전시한다는 「선철거,후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유물이전과 임시보관장소의 개·보수를 위해 1백30여억원의 예산까지 잡아놓고 있다.
우리는 김영삼대통령이 옛 총독부건물을 조속히 해체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이미 우리의 입장을 밝힌바 있다. 일제의 건축 의도와 상징성 때문에 옛 총독부건물을 헐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면 해체하긴 하되 박물관을 지어 유물을 올긴 다음에 헐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또 대부분의 국민여론도 그쪽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당국은 이러한 국민여론은 아랑곳없이 「선철거」를 강행하려는 움직임이다. 당초 99년에 완공키로 돼있던 경복궁 복원공사를 97년으로 앞당겨 놓은 것을 보면 96년 철거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려는 의도가 분명한 것 같다.
정부는 유물손괴의 위험과 재정낭비를 무릅쓰면서까지 왜 이 철거작업을 굳이 서두르는 것일까. 우리는 솔직히 말해 총독부 건물을 부수고 그 자리에 경복궁을 복원한다해서 민족정기가 되살아나거나 왕성해진다고는 믿지 않는다. 광복직후 구성됐던 반민특위가 강제로 해체되고,친일 기득권 세력이 해방독립정부의 요직을 차지한 것이 옛 총독부 건물을 헐지 않아 생긴 일인가. 다만 그것이 치욕스런 피침사의 유물이고,그 위치의 상징성 때문에 항상 눈에 거슬리는 존재인 것은 사실이다. 또 치욕의 역사도 역사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역사적 반성의 자료로 삼자는 여론도 없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런 저런 연유로 광복후 50년 가까이 놔두고 활용해오던 건물을 무슨 흉측스런 액물인양 당장 헐어야만 한다고 서두르는데는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더군다나 그 서두름이 안고 있는 민족의 유산에 대한 분명한 위험을 묵살하고 있으니 걱정스럽게 그지 없다.
이러한 서두름이 혹시 당대의 업적주의나 공명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뒷날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될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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