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법정소란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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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일 열린 박철언피고인에 대한 결심공판장이 방청객들의 소란과 욕설로 아수라장이 됐다고 한다.
변호인단이 법률적 견해를 밝히며 재판부를 성토하는 것도,재판부 기피신청을 내는 것도,퇴정한 것도 모두 나무랄바 없는 법적권리다. 그러나 동시에 재판부가 그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강행하려한 것도 재판절차상 잘못됨이 없는 재판부의 재량권에 속한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방청객들은 『정치재판 때려치워라』 『개판이구만』 등의 야유와 판사에 대해 『이 ××야 판사가 줏대가 있어야지』 등의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우리는 재판부가 이런 방청객들에 대해 왜 법적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박 피고인 재판에서의 소란은 처음이 아니다. 재판 때마다 단체 방청객들이 몰려들어 법정을 소란하게 해왔다.
우리가 보기에 박 피고인에 대한 재판은 과거의 시국사건과는 그 성격이 엄연히 다르다. 과거의 많은 시국사건 피의자들은 연행단계에서부터 변호인 접견 등 법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고,수사과정에서도 고문 등 불법행위가 저질러지기도 했으며,재판부도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박 피고인은 그런 경우가 아니지 않는가.
피고인측으로서는 이번 재판 역시 정치재판이란 생각을 가질 수도 있으나 그것은 피고인과 변호인단에 의해 어디까지나 논리적·법적으로 항변될 성질의 것이지 집단소란행위를 할 성질도,그것으로 입증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재판부에 불만이 있으면 변호인단이 한 것처럼 기피신청을 내면 되고 1심 판결에 불복하면 2,3심에서 다시 법적 싸움을 벌이면 된다.
우리도 박 피고인에 대한 수사가 정치적 동기에서 시작되었다는 세평이 있다는 것쯤은 모르고 있지 않다. 그러나 방청객들이 집단으로 이번 재판을 「정치재판」이라고 야유하며 법정을 소란케 하면 할수록 오히려 피고인측이 이번 재판을 정치재판화하려는 것이란 인상을 줄 뿐이다.
법의 권위를 확립하는데는 재판부와 검찰·방청객들에게 다같이 책임이 있다. 계속되는 법적소란으로 사법부의 권위와 법질서를 흔들어놓으면 그 피해자는 누가 되는 것인가. 더구나 박 피고인은 법조인 출신이기도 한데 이런 법정분위기를 보고만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오해의 소지를 낳는 것이다.
재판부의 태도가 우유부단한 것도 문제다. 사법부의 권위를 위해 진작부터 법정관리를 엄격히 했어야 옳았다. 미온적인 대처는 오히려 정치재판이란 인상을 줄 위험이 있다. 검찰도 문제다. 이건개 전 고검장에 대한 대응과 박 피고인에 대한 대응이 너무도 대조적이지 않은가. 그러니 정치재판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오는 것이다. 문민시대 사법부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선 피고인측도,재판부도,검찰도 다같이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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